어느컴맹의 일기장

어느컴맹의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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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X년 2월 1일

드디어 컴퓨터를 샀다. 방문을 잠그고 포장을 뜯어 어제 새로 산 컴퓨터 책상에 조심스레 올려놨다. 멀숙하게 생긴 것이 정말 맘에 든다. 오늘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내일은 한번 해봐야지, 가슴이 설레여서 잠이 안올것만 같다.


200X년 2월 2일

오늘은 애 많이 먹었다. 컴퓨터를 어떻게 켜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컴퓨터 사용 책자엔 전원을 켜라는데 컴퓨터에 전원이라는 글자는 없다. 이리 보고 조리 보아도 없다. (혹 내가 못찾은걸까?) 아! 벌써 새벽 2시다. 이래서 MADE IN KOREA가 욕을 먹는것 같다.



200X년 2월 3일

아무래도 컴퓨터 앞에 단추처럼 가지런하게 있는 두개의 버튼이 신경쓰인다. POWER..... 사전을 찾아보니 내가 알고 있는 뜻과 별 차이가 없다. <힘, 능력, 에너지, 활력...>, 그렇다면 요놈은 전원이 절대 아니란 말인데... 아무래도 RESET이라 써있는 쪼그만 버튼이 맘에 걸린다. 내일은 꼭 켜보리라. 난 의지의 한국인이다.


200X년 2월 4일

수많은 걱정과 우려속에 조심스레 RESET 버튼을 살짝 눌렀다. 컴퓨터에 기별이 안가나? 다시 한번. (요번엔 좀 세게, 좀 길게 눌렀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젠 나의 참을성에도 한계가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할때인거 같다. 내일은 집앞의 컴퓨터 학원에 등록을 해야지. 기다려라 컴퓨터! 내일이면 넌 나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푸하하하! 괜히 유쾌해진다.


200X년 2월 5일

학원에 갔다. 10분 지각이다. 근데 어찌된 일인가? 벌써 시작한 뒤였다. 내자리의 컴퓨터도 전원이란 놈이 들어와 있었다. 아차 싶었다. 오늘은 자판연습이였다. 신기하게도 내가 두드리는 대로 화면에 나온다. 신기하다. 하지만 오늘도 어떻게 켜는지는 못 배웠다. 집에 와서 잠을 청하려해도 저녁에 학원에서 보았던 신기한 자판화면이 머리에 떠올라 컴퓨터에 다가갔다. 하는 수 없이 검은 화면만 물끄러미 보며 자판을 두드렸다. 재미있었다.


200X년 2월 6일

오늘은 학원에 일찌감치 가서 기다렸다. 근데 학원선생이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전부다 컴퓨터를 켜는게 아닌가? 대단한 수강생들이다 싶었다. 맞다! 하긴 어제 처음에 가르쳐 주셨겠지. 나만 시커먼 화면이였다. 학원선생님께서 전원을 켜라고 했다. 참 난감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어제 쪼끔 늦게 와서 전원 키는건 못배웠노라고. 웃는 학원선생과 수강생들의 얼굴이 귀여웠다


200X년 2월 7일

오늘은 일요일. 어제 친절하게 설명해주신 학원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전원을 켰다. 이상한 글씨의 나열과 함께 화면이 켜졌다. 솔직히 눈물이 글썽거릴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내가 대견해진 기분이다.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께서도 대견하시단다. 근데 문제는 바로 전에 생겼다. 내 실수다. 켜는건 배웠는데 끄는건... 답답하다. POWER 버튼은 킬때 사용하는 거니깐. 또 다시 RESET이란 놈이 자꾸만 거슬린다. 다시한번 큰맘 먹고 꾸욱하고 눌렀다. 초조해졌다. 성공! 성공이다. 꺼졌다. 어라 이상하다. 다시 켜졌다. 이상하다. 그래! 분명 끄는건 맞는데 공장에서 실수를 해서 불량이 나온건 아닐까? 어째든 서너번 시도하다 안돼서 포기하기로 했다 물론 애석하지만 컴퓨터는 켜논 상태로 당분간 놔둬야 겠다.


200X년 2월 8일

용기있는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 학원선생님께 컴퓨터 끄는 걸 배웠다. 역시 친절히 가르쳐 주셨다. 이번엔 지난번처럼 웃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귀엽게만 보이진 않았다. 은근히 열받았다. 집에와 컴퓨터를 보니 상당히 뜨거워져 있었다. 이것도 열받았나보다.


200X년 2월 9일

학교에 가서 선생님들과 애들에게 학원에서 배운 지식을 나누어 주었다. 물론 컴퓨터 끄는것과 켜는 것을 잊지않고 가르쳐 주었다.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음, 역시 아는게 힘이다 라는 학설은 맞는가 보다. 근데 이상하게 그후 나만 보면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웃는다. 처음엔 존경의 미소인줄 알았는데, 아닌것 같다. 왕따 그래 이지메 비슷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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