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님 우리의 꿈은 무엇이였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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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님 우리의 꿈은 무엇이였을가요

tongdol 6 203 4 1

김감성님 먼지 모를 불편한 글 인내 하고 참고 저의 기분까지 고려하여 남겨주신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나중에 호주가면 꼭 밥사주세요 ..메모 했습니당.ㅎ~ 


그리고 글이 길어 질것 같아 다시 계시판에   그때 상황을 간단하지만 조금 길게 말해 볼게용!


여학생들왈, ~북한에서 10대 들은 학교를 졸업하며 어떤꿈을 가지고 있으며 꿈이 있다면 꿈을 이룰수 있는 확율은 얼마입니까.!...


그리고 보통 북한의 10대들은 모여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대화들을 하는지...


내는 암만 생각해도 북한에서 꿈이 머였던지 모르겠더라구요..


초등학교때 책이 너무 재미나 책방 주임 해볼가 생각해본적이  잠간 있었고...초등학교때 반쪽빠리 소리 들으며 놀림 당할땐 싸움 존내 잘하는 쌈군이 되고 싶은 적이 있었고 ..중학교 졸업 말기엔 진로를 거듭 고민해 보았지만 딱히 할수 있는게 없어서 군대로 가서 일단 입당이나 해볼가? 그런 생각 잠간 해봤는데 그 군대도 안보내 주더라고요..


내꿈은 없었다치고 주변을 둘러 보아도 미래를 꿈꾸는 친구들을 본적이 거의  없었어요..


내가 졸업땐 정말 배급만 의존하던  사람들은 집에서 풀죽도 못먹었거등요.


기억을 조금 더, 더듬어 보면 남학생들의 꿈은 군대가서 입당하는거였고 여학생들은 시집 잘가는게 꿈이 아니였을까요?


가끔 여교사가 되고 싶다거나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다던가...머 이런 꿈들이 더러 있었던걸로 기억하는데...그 꿈을 이룬 사람이 거의 없었던것 같아요.


내가 이말을 하는 이유는 00경이라는 이쁘장한 여학생이 갑자기  기억이 났어요.


떠오른 이유는 그학생들의 리더가  여학생이 였는데  땡경이랑  닮았다는 그런 느낌이였어요.


땡경이는 교원이 꿈이였죠.


그래서 땡경이 이야기를 조금 할게요.


그애가 중5인가 중6때 담임 선생님과 농촌동원에서  (식당에서 일하면 선생님이랑 함께 생활, 선생은 남선생.당시20대후반)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어버리죠.


선생은 유부남이지만......암튼 필요없는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여학생은 선택권이 거의 없었을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길에서 잠간 그녀를 본적이 있는데 교원은 커녕 ..야위디 야워서 길에서 나를 피하는 모습이 기억 나더라구요!


~~~~~~~~~~~~~~~~~~


 그래서 저의 생각은 그랬습니다.


우리는 북한에서 꿈이 거의 없었구나.. 꿈이 있었더라도 그건 개꿈일거야...라고 생각했죠..


또 그들이 물었습니다.


10대들은 모여서 무엇을 합니까?


나는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그러고보니 생각나더라구요.. 학교때부터 꿈은 돈돼지가 되는게..(부자) 꿈이였더군요.


모여앉으면 어디 돈구멍이 없을까? 이런 생각들을 교환 했더라구요...


그런데 북한 하늘에 무슨 돈구멍이 있는것도 아니고 말이죠..


결국엔 ..우리는 모여앉으면 범죄를 논하고 있었던거에요..


그게 큰범죄던 작은범죄던...먹고 살기 힘들고...정말 가만있으면 굶어 죽기에


어떻게든 먹고살려 하다보니 ..돈을 찾게 되고 돈돈 하다보면 결국엔 크고 작던 범죄로 연결될 확율이 꽤 많았어요


결국. 나라가 개판이니 10대들의 꿈은 없었다.. 


그리고 세상에 듣도보도 못한 나라에선 굶어 죽지 않으려면 머든지 해야 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저는 그렇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니들이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은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되 라고!


진짜 나와 내주변 친구들만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모여 앉으면 돈구멍 찾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본주의 야박하다지만 그래도 꿈을 꿀수 있고 소박한 꿈이라도 꾸면 굶어죽진 않아서 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6 Comments
김감성 2022.12.10 11:45  
진짜루 크게 메모해놓으시고 캡쳐해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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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인민학교 2학년때 첫 꿈은 제빵사였어요.이유는  엄마가 만들어주신 쏘련식 흘레브(베게빵)와 찐빵이 그렇게 맛있었는데 그걸 매일 배부르게 먹을수있는게 소원이였어서 공장서 빵만드는 사람이되면 실컷 먹을수 있겠다싶었거든요ㅎㅎ(학급친구들에게도 빵에는 요론빵 조론빵 이따만한 빵 요따만 빵이 있는데 함서 그림그려가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거짓말얘기를 들려주었죠~ 하 지금도 이글쓰는데 그때 그기분이 들면서 웃음짓네요)
그러다 유치원선생님으로, 재봉사,돼지국밥장사해보는거(이것도 넘 먹구싶어서 ㅎㅎ)유명한 대학교수가 되는것( 첨으로 맛본 일본사탕이 넘나맛있고 싱기하게도 치아에  달라붙질않았던게 충격이였음~그래서 뱅기타고 일본이란 나라를 꼭 가서 사탕실컷먹고싶었거든요...그래서 꾼 꿈이 이름있는 교수가되면 나라에서 승인해줘서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도 가볼수있지않게 그런 막연한 꿈을 꿨어요) .......하씨 또 슬퍼지네 그시절만 돌아가면ㅠ(입빠르게 꿈얘길했다가  또 사상투쟁회에 오름...아 그때 제가 알았어요 내 요 조둥아리가 문제구나 ㅇㅇ 근데  그 조동아리 지금도 여전함 ㅇㅇ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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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호주로 함 꼭 오세요...오시면 우리 고향 강내이국수가 돼지고기국에 만 흰쌀밥이 팅팅불어 국그릇을 넘어 식탁까지 흘러 넘쳐도 모늘정도로 그때그시절  여행놀이 해봅시다^^
tongdol 2022.12.10 22:54  
이래저래 바쁜것도 없는데  지금 댓글 답니다. 강내국수  제가 엄청 좋아합니다! 나름  잘살때도 엄니가 해준 강내국수 엄청 좋아했슴다 ㅎㅎ 고기도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더좋아합니다 ㅎㅎ 우리 비록 함께 늙어가지만 ㅎㅎ 마음 거기에 ㅠ머물러 있으니  함만나  실컷  북한 슝도 보고 애틋함도  그려봅세당 ㅎㅎ구때그시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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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7890 2022.12.11 05:13  
꿈??
북한은 자유가 없다고 말은 잘 하더군요.
정작 얘기하다보면 가끔 거짓말같은 거짓말들이 섞여있는듯 해요.
글쓴님이 그렇다는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아무리 같은 고향사람들이라고해도 대화들이 서로 달라요.
옆에서 듣다보면 뻥쟁이 같이 느껴질때가 있더라구요.

북에서 꿈은 나라의 정책, 프로그램자체가 억압입니다.
즉 선택권이 없는거죠.
예를들면 아빠가 직장다니면 아들도 군대갔다와서 직장으로, 군대못갔다면 바로 직장으로 배치됨,

또다른집)아빠가 농부이면 자식도 농부가 됨..대대손손...

이것이 북한의 정치이고 자유박탈입니다.

그런데 꿈이 있으면 뭐합니까?
대학갔다가도 다시 시골 고향으로 배정되는데,,
그러니 꿈을 접고 살수 밖에요.

남자는 무조건 입당해야 남자로 보고  북한은 아직도 남자들이 거의 총대를 메죠.  지휘관을 시킨대도 남자를 우선순위를 메기니깐요.
남자로써의 일꾼이 되고 그나라의 지훠관이 되려면 무조건 입당은 기본 이였으니깐요.

여성도 한창  꽃필나이에 몸사리지 않고 낮이나 밤이나, 누가 보고나 말거나, 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앞만보고 일하면 입당 시켜줬죠.
즉 성실,근면,책임감이 있으면 입당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나 그때나 그쪽에선 그렇게 살아야 살방법 이였을겁니다.
먹고살기 힘든건 위치와사는곳에따라 다른것 같습니다.
가난은 되물림이란 얘기 있잖아요~
부인하고 싶겠지만 옛날말 하나 틀린데 없는것 같습니다.
tongdol 2022.12.11 09:10  
댓글감사합니다! 꿈은 꾼적이ㅜ다들 많지ㅜ않았을까요! 입당에 대한 이야기도  썼습니다!  아  그리고 농장은 거의ㅜ대물림  되겠네요 ㅠㅠ 거기까진  생각  못했습니다!ㅠ 저의글을 다시보시면  북한에서 꿈이  있었단들! 그것은 이룰수 없는 개꿈이라고 말했기에 님의ㅠ댓글과  많이  같아 보인다는 저의  생각인데 말이죠! 암튼  조금 틀리다면 근면성실 입당은 개인적으론 말이  안된다고ㅠ생각합니다. 근면성실한 사람  다굶어죽었어요 ! 이건 진짜에요! 암튼 고난의 행군시기내가 겪은  북한은  입당에도 뽄트라고 했던가?  같은데  암튼 구런게  있어가지고 매해  직장 부대 돌격대  등  각분야에 몇개씩  내려오는듯 하는데~토대 좋거나 간부들에게  잘보이거나  하면 입당길이 조금은  수월했던걸로 기억합니다, 만  고난의 행군때는 입당같은 생각 하던사람  별로  없었습니다 근면성실 하다가는 굶어죽으니  진짜 다들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죠 ㅠ[저는 94년 졸업 한 해부터 의 북한을  말하고 있습니다! 7~80년대 북한은 근면성실  입당 했을겁니다! 저희아빠가  대표적인 예이죠! 입당했으니까! 하지만 저의글은 제가 겪은 시기에 겪었던 글입니다, ]
SOS7890 2022.12.11 19:20  
네..공감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곳은 변화지 않을겁니다.
북에서의꿈은 마음속의꿈, 꿈속의 꿈일뿐 이지요~
tongdol 2022.12.11 19:28  
그렇죠! 제가 글을 너무 길게 썼네요 ㅠ 변환건  쌀값이 뛴것 쁀이죠! 거기서 꿈이 있은들! 그러고 보니ㅜ막연하게  어릴때부터 탈북을 꿈꾸긴 했네요! 일본 가고 싶다는~ 그러고보니 저는 꿈을 이룬듯 싶습니당 ㅎ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