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스 트 레 스
사회에 나와 도우미의 소개로 첫 번째 잡은 일자리가 과자공장이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과자공장이라면 북한에서는 뒷줄이 든든한 아낙들이 아니면 한자리 하는 간부부인들이 독차지 했던 고급 일터였다.
나 역시 북에서 살 때 정말 일하고 싶었고 많이 선호했던 일터였다. 그러나 그건 그저 꿈의 신기루 같은 것이었을 뿐 평범한 주부였던 내게 차례질 수 있는 일터가 아니었다.
그런데 남한에 와서 별로 힘들이지 않고 이 일터가 내게 척 차례졌으니 내가 어찌 쉽게 잠들 수 있으랴, 그 날 밤 나는 정말 달콤한 잠에 빠졌고 꿈에서는 김 오르는 일터에서 산뜻한 위생복을 입고 밝은 웃음 속에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나의 멋진 모습을 보며 싱글벙글 했다.
첫 출근을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하는 나의 기분은 전날 밤 꿈꾸었던 황홀했던 기분과는 정반대로 침울했다.
일하면서 당한 일들이 자꾸만 떠올라 화가 나고 역기가 치솟았다.
나보다 나이 상 10년은 아래일 여자가 내가 일하는 모양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언니,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이렇게 해야 돼요,”
그녀의 가르침이 처음엔 고마워서 머리까지 조아리며 네, 네 그렇게 해 보겠어요, 네에,,
했는데 점점 횟수가 많아지고 그 도가 넘으니 나중엔 짜증이 생겼다.
“이렇게, 이렇게, 센스가 말이 아니군요 불 합 되면 책임질 거예요? 모양 하나 잘못돼도 안 되는데 그렇게 거칠게 다루면 어떻게 해요”
“야 참 또 그런다, 이거 이게 불합격품이네요, 그러다 이 달 일 공치겠네요,”
“아니 이젠 여러 번 반복했는데 처음보다 못하면 어떻게 해요? 아 참 북쪽 사람들이 거칠다고 하더니 되게는, 이렇게 볼모양 없는 과잘 누가 사 먹어요?”
차암 이거 열받아갖고,,,
전날 밤과 달리 오늘 밤은 온 밤 얻어맞는 꿈만 꾸었다.
된서리를 맞는 날이 하루 이틀 흘렀다. 닷새 째 되는 날 내게는 과자를 만드는 공정이 머릿속 그림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몸과 손은 공정을 따라 저절로 움직여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숙련하면 누구한테 ‘수모’를 받으며 일하는 처지를 면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 안의 내 생각일 뿐
별로 안 좋은 기색으로 그 여자가 또 다가왔다. 더 심한 말이 거침없이 쏟아진다.
“좀 안다고 건방 떨어요? 일 시작한지 닷새나 되는 언니가 이렇게 과잘 만들면 어떻게 해요,”
그녀가 불합격품 하나를 꺼냈다. 간혹 생길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고급기능이라도 완전 자동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모양까지 빚는 이런 환경에서 누구나 그만한 오작은 내고 있는 실태였다. 그런데 이 여자는 별스레 나한테만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더욱이 우스운 것은 이 여자도 나와 입사 날자가 다를 뿐 직책은 그저 기능공과 신입공의 차이라는 것뿐이다, 근데 왜 이리 극성인지 모르겠다. 제가 뭔데, 불합격품을 내도 내가 책임질 일이고 값을 물어도 내 몫인데, 제가 왜?? 처음과 달리 이젠 이 여자의 말 한마디에 온몸의 신경이 고슴도치 털처럼 빳빳이 일어선다. 그걸 참노라면 욱 하고 역기까지 치밀었다.
그래도 교육원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 참는 것이 이기는 거라는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성경처럼 곱씹었게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이 여자는 그 첫마디에 벌써 내 주먹에 턱이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되지 못하게, 북한 같으면 대체 어디라고?
아, 이것 참, 열기가 올라 파란 핏줄이 내 얼굴에 뻗치는 줄도 모르고 그냥 기능공의 의무에만 충실한 이 아둔한 여자, 드디어 일은 터졌다.
아마 그게 일한지 일주일 만에 터진 나만의 분풀이일 거였다.
한 밤 어떻게 하면 그 얄팍한 입에 재갈을 물릴 것인가를 고민하느라 잠까지 설쳤던 나는 그 다음 날 예의 그 여자를 중시했다. 오늘 개기기만 해 봐라,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다. 북한여자의 본때를 보여 줄 것이다. 그간 받은 스트레스를 고대로 넘겨 줄 테니까,
털을 세운 살쾡이처럼 잔뜩 독을 품은 내 기분은 아랑곳없다는 듯 또다시 그 여자가 살금살금 내가 일하는 기대로 왔다.
물론 거기에는 못나게 빚어놓은 과자가 보란 듯이 그 여자를 쳐다본다.
내가 일부러 보란 듯이 내놓은 거다.
“아유 기막혀, 이거 또 이렇게 빚었어요? 아니 도대체 그 쪽은?? 머리가 잘못됐나요, 아님 손이,”
“야,”
그 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이 센 내 목소리가 공장안을 울렸다.
일단 터진 나의 입은 연속 따발총을 쏘듯 한다.
“너 쬐꼬만게 왜 이리 설쳐? 정말 죽고 싶어 환장한 거야?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못하는 소리가 없네, 너 몇 살이야?”
“??”
그 여자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스물아홉, 왜 그래요?”
“몰라서 물어? 너 40넘은 맏언니 벌 되는 나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맏언니는 무슨, 여기서 나이소리가 왜 나와요? 과자를 나이로 만들어요?”
요것도 만만찮긴 만만찮다. 하지만 일단 입이 터진 이상 네가 나를 이겨?
나는 한 발 다가서며 그녀의 코앞에 주먹을 들이댔다.
“야,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 라야, 불합격품이 나와도 내가 책임질 거고 변상해도 내가 하는 거야, 나 너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 쌓이니까 더 이상 여기서 일 안할 거야. 그러나 나 혼자만은 나가지 않을 거야, 너 붙들고 나갈 거다. 알겠어?”
얼핏 그 여자의 얼굴에 조소 같은 미소가 흘렀지만 내 따발총은 연발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나이 30도 안된 것이 며느리 삼형제쯤 거느린 것처럼, 어데서 배워먹은 잔소리야? 이봐요, 너나 잘하시라요.”
와, 작업장에 웃음이 터진다. 왜 웃는지도 나는 감별할 여유가 없었다. 울기가 올라 푸르 떡떡 거리는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가관이었지만 그때는 일정한 효과를 거뒀다.
순식간에 울음을 한가득 입에 문 그 여자가 어느새 쌩 작업장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내게 연락이 왔다. 반장님이 찾는다는 통지였다. 얼른 들어가 보니 그 여자가 한옆에 앉아 있었다. 오라, 네가 여기 와서 선발을 치는구나, 이거 못된 년, 그 순간만큼은 북한에 있을 때의 일이 냉큼 떠올랐다.
이런 경우 북한에서는 먼저 당위원회 문고리를 잡는 사람이 이기는 거였다. 상황에 맞게 말도 잘해야 하는데 대개 보면 먼저 들은 말에서 일정한 파악을 하는 터라 후에 들어 온 사람은 웬만한 능력이 아니고서는 상황을 돌려세우기 힘들다.
그런 생각이 나자 화가 곱으로 치밀었다. 진짜 이런 경우 마구 달려들어 머리끄덩이를 잡아챈다. 근데 여기는 북한이 아닌 남한이라는 데서 용케도 나는 나를 다잡았다.
파란 불이 팔팔 이는 눈길로 대드는 나의 태도에 그 여자가 먼저 화해를 청했다.
“제가 너무 언니 감정을 건드렸나 봐요, 이젠 저도 알만큼 알았으니 속 푸세요.”
공장에 들어와서 처음 들어보는 살가운 그 여자의 목소리다. 반장도 나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이젠 그만 속을 재우고 잘해보라고 격려했다.
다음날부터 나의 열정은 한 겨울의 난로불보다 더 뜨겁게 타올랐다. 이러한 경우 그 여자보다 더 잘 하지는 못해도 결코 흠 잡힐 꼬투리는 잡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의지였다, 마음먹으니 기능이 쑥쑥 올라갔다. 드디어 석 달 만에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달인이 됐다.
공장에서 엇비슷이 같은 시기에 들어 온 사람들을 모아놓고 치른 과자 만들기 시험에서 내가 단연 일등을 차지했다. 반장은 나에게 이제는 신입공이 오면 능히 가르침도 줄 수 있는 기능공이라고 칭찬의 말을 할 때 나는 슬그머니 그 여자를 곁눈질했다. 그 여자도 웃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언니벌인데,, 어찌 보면 그가 내게 준 그 (스트레스)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의 기능은 그렇게 쉽게 찾아오지 않았으리라, 얼른 그녀에게 다가간 나는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느끼며 뜨거워진 손을 내밀어 포옹했다. 그 여자가 말했다.
“언니, 축하해요”
“정말 고마워”
어느새 우리는 너무도 가까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북, 아줌마의 이야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