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만 있어다오 5.
어쩌겠어? 죽은 사람은 죽은 거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면 우리 식구들 다 만나게 될 꺼라고 생각해, 언니야, 난 북한에서 속고 산 세월이 너무 억울해서 여기선 악착같이 공부하고 있어, 학부 마치고 대학원도 갈꺼야, 많이 배우고 알아야 다시는 속지 않고 살 꺼 아니야...
헤어지면서 A가 나한테 해준 말이다.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많이 배우고 깨달아야만 두 번 다시 속지 않고 산다는 것, 북한에서 그리 허망하게 속고 살아온 탈북자들이라면 누구나 새겨들어야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진실과 거짓을 가려볼 줄 아는 안목을 길러내는 것, 그것만이 혈육들을 가슴에 묻은 채 아픈 가슴을 부여안고 살아가는 우리들=탈북자들이 온몸으로 깨달아야 하는 숙명과도 같은 진리가 아닐텐가...
작별의 시간은 어느덧 다가오고 나는 A와 헤어지면서 꼭 안아주었다. "이렇게 만났으니 앞으로 함께 힘들때마다 의지하면서 씩씩하게 버티자꾸나..." A도 가을들국화마냥 청순한 미소를 한가득 짓는다. “언니도 건강하게 잘 지내요. 다음에 또 봐요.”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A의 모습이 점점 뿌잇하게 흐려진다. 시선을 돌려 하늘을 쳐다보니 끝 간데 없이 파아란 가을하늘에 찬란히 빛나는 태양이 참으로 눈부시다. 서둘러 눈물을 감추며 나도 돌아섰다. 세상 어딘가 살아있으면 이렇게 언젠가는 만나게 되나보다. 살아만 있는다면...
아 그리운 이들이여, 다시 만날 그날까지 살아만 있어다오...
- 2012년 10월 1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