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강조해야
며칠 전 어느 한 단체에서 조직한 등반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등반에는 모 대학의 부총장을 비롯해 많은 지식인들과 여러 분야의 유명 인사들이 함께 했다.
산에 오르는 중에 서로가 나누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니 수준들이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참 존경스러운 분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는 생각에 산행이 더 즐거웠다. 그런데 이런 기분이 씁쓸해 지게 된 것은 산에서 내려와 막걸리를 앞에 두고 마주 앉은 시간부터였다.
좌중에 앉은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내가 탈북자인 것을 그때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그분은 나까지 두 번째로 탈북자를 보게 된다며 막걸리잔도 따라 주며 친절을 베풀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북한에 대한 관심과 통일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 거리가 되었다.
이야기 중에 여성 한분이 문득 한 가지 물어 볼 것이 있다면서 지금 남과 북이 언어가 서로 달라 장차 통일이 된다 해도 소통이 어렵지 않겠는 가고 했다.
나는 그에게 “같은 민족인데 왜 언어가 다르겠습니까, 오랜 분단의 결과 문화적으로 일정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인과도 소통이 되어 사는 시대인데 너무 염려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분은 자기는 북한에서 사용하고 있는 말이 남한과 너무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실례로 북한에서는 전구를 ‘불알’, 형광등은 ‘긴 불알’이라 하며 남녀가 입을 맞추는 것을 키스가 아니라 ‘주둥이 맞춤’이라고 말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왜 염려되지 않겠는가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혹시 농담으로 하는 말이려니 하고 넘기려 했으나 주변사람들이 모두 진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것을 보니 진담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들도 그렇게 들었다며 그게 정말인가고 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어디서 어떤 경로를 통해 알려진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것은 누가 웃기느라고 꾸며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북한에서도 여기와 마찬가지로 전구를 전구로, 형광등을 형광등이라 하고 입을 맞추는 것도 키스라고 말한다고 알려 주었다. 그러자 모두가 그게 사실인가고 반색하며 “역시 한 동포가 맞긴 맞네”하며 머리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이런 일을 전에도 몇 번 겪었었다. 그러나 대개가 북한에 대해 잘 알 수 없는 환경에서 생활했거나 지식정도가 비교적 높지 않은 사람들과 만났을 때 있었던 일들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공부를 해도 대단히 많이 한 사람들이고 보니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 봐도 동서고금을 앉은 자리에서 일사천리로 오가며 해박한 지식을 피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박식한 사람들이 유독 북한에 대해서만은 너무 모른다는 것이 실망스러웠다.
남북의 차이를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는 편향 된 분위기가 만든 남한사회의 자화상이었다. 그 때문에 공부깨나 한 사람들마저 북한에 대해서만은 분별력을 잃고 듣고 보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남북의 언어를 비교한 일부 책들에는 서울의 표준어와 함경도사투리를 마주 놓고 남북한 언어 비교라고 제목을 달고 있다.
그렇게 해서 언어가 이질화 되었다고 한다면 너무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서울말과 제주도말을 비교해 사전을 만들면 그 차이는 서울말대 함경도말의 차이에 비교도 안 될 것이다.
그런 식이면 제주도는 더 이질화 된 것인가!
통일교육은 마땅히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시켜줌으로서 통일에 대한 열망에 활기를 불어 넣어 주는 것을 사명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분단역사 과정에 생긴 차이점에 대해서도 그것을 난치의 병이나 불치의 병처럼 받아들이게 하지 않도록 제어 해주고 얼마간의 노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지금 남북의 차이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사실 이상으로 부풀려 지고 있다. 이런 거품을 반드시 빼야만 한다.
아무리 살펴봐야 “역시 하나의 민족이 맞긴 맞구나”하고 반색을 짓게 해주는 책이나 글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거의 전부가 차이만을 강조하여 통일의식 제고에 도움보다는 “차라리 통일을 하지 않고 그냥 따로 사는 게 편하다”는 식의 부작용을 낳을 소지가 있는 것들이다.
나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더 많이 보고 있다. 확실히 공통점이 더 많이 녹아 있는 우리 민족의 모습들을 확인해 보는 것이 참 즐겁다. 마음을 어떤 기준에 두는 가에 따라 차이점만 크게 보이기도 하고 공통점이 크게 보이기도 한다.
공통점을 발견할 때가 감격스럽지만 차이점을 발견할 때면 서글퍼진다. 그리고 북한사람보다는 차라리 외국 사람과 소통이 더 잘 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착각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탓하기보다는 그런 환경을 만드는 사람들이 원망스럽다.
민족의 동질성확인에 중점을 두지 않고 이질감을 찾아내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은 분명 통일의지 제고에 도움보다는 오히려 부작용이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