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장편 소설★ 서리꽃 사랑, 제9회.

★창작 장편 소설★ 서리꽃 사랑, 제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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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

박무호와 맞닥뜨린 혜련은 흠칫 놀라는 기색이었으나 이내 표정을 바꾸고 정색했다.
"미안해요."
혜련이 고개를 돌린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니야, 나 당신 붙잡으려고 온 거 아니야. 너무 보고 싶었어. 견딜 수가 없었어."
박무호가 혜련의 손을 잡으며 다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랬다. 인연이란 것은 참으로 묘한 것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이 혜련이란 한 여자에게 이토록 깊이 빠졌는지, 그녀가 자신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자리잡고 있는지 그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녀가 없으면 숨쉬는 일조차 힘겹다는 것밖엔........
혜련의 손은 차가웠다. 그리고 마주잡은 혜련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가서 옷 가방 가지고 나올게요."
혜련이 무호에게 잡힌 손을 빼 내면서 말했다.
"아니야. 당신 지금 혼자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 들어가서 그 사람하고 얘기하고 나올 때 내게 전화 해. 난 저쪽에 호텔을 잡아 놓고 있을게."
박무호가 해변에 기세 좋게 버티고 서 있는 호텔을 가리키며 말했다.
"알았어요. 금방 갈게요."
박무호는 오던 길을 뒤돌아 멀어져 가는 혜련의 뒷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혜련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정대일에게 말했다.
"나를 호텔에 내려주고 자넨 회사로 돌아가 보게."
"알겠습니다. 사장님."

모텔 객실로 돌아온 혜련은 전 남편 강치수에게 말했다.
"그 사람이 찾아왔어."
"뭐라구? 그 자식이 어떻게 알구?"
"몰라. 마트에 가는데 골목에 서 있더라구."
"그러니까 그 자식하고 통화하지 말랬잖아!!"
"왜 나한테 성질이야!"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일단은 따라갔다가 다시 도망쳐야 될 것 같아."
"그러게 혼인신고는 왜하고 지랄이야!"
"나도 애들하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어. 나는 뭐 그 사람이 좋아서 한 줄 알아? 싫지만 좋은 척 해주고 성관계 하는 것도 싫지만 좋은 척 해주면 우리 아이들은 걱정 없이 살잖아. 학교 다니고....벌써 내가 그 집에서 없앤 돈이 얼만데....그러니 좋은 척하고 일단 달래 놓고 기회 봐서 이혼을 하던가 아님 다시 도망칠게."
"너 그 자식이 정말 좋은 거 아냐?"
혜련은 대꾸하지 않았다.
사실 전 남편 강치수는 정말 싫었다. 모든 것이 싫었다. 하지만 지금의 남편 박무호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애초부터 사랑이란 감정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었다. 다만 돈이 있는 사람이니까 애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좋은 척 연극을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에게 너무나 큰 재산상의 피해를 준 것 또한 사실임으로 어찌해야 좋을지 모를 만큼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아무튼 내가 연락할 때까지 절대로 전화하지 마. 내가 알아서 빠른 시일 내로 처리할게."
"니 맘대로 해라."
혜련은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강치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미혜하고 현국이 학교 다니는 데 지장 없도록 해주고 돈 관리 잘해. 이제 정말 더는 가지고 올 수 없을 거야."
혜련이 전 남편 강치수를 만나고 함께 도망치고 한 것은 그가 좋아서가 아니고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못난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가 일어서야 아이들이 편하게 공부를 하고 제대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박무호는 호텔 객실 창가에 앉아 끝없이 넓은 바다를 바라다보며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바다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였다.
먼바다에는 고기잡이배들이 간헐적으로 오갔고 가끔씩 유람선이 오가는 모습도 보였다.
하염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모래사장에 끊임없이 부딪혀 하얗게 꽃을 피웠다.
공중에선 갈매기들이 그 파도소리에 맞춰서 공중곡예를 벌이며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새 어둠이 내려와 바다를 삼켜버렸고 검은 바다 위에는 휘황한 네온이 번쩍이는 호텔의 그림자가 힘겹게 누워 있었다.
바다는 언제 와 봐도 그 자리에 변함 없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반겨주었다.
아무리 긴 세월이 흐른 뒤라도 자신을 찾는 이들에게 한결같은 모습으로 진실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렇다.
바다는 어머니와도 같았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르고 돌아와도 꾸짖지 않으시고 넓고 포근한 가슴으로 언제나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시던 어머니.......
세파에 시달려 지치고 병들어 돌아오더라도 언제나 따뜻한 가슴 열어 포근히 안으며 반가이 맞아주시는 어머니.
박무호는 어머니를 떠올려 보았다.
어린 시절 그는 개구쟁이에 골목대장이었다.
그의 놀이터는 산과 들이 전부였다.
산으로 들로, 들꽃들과 나무와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뛰놀 때면 너무나 행복했다.
혜련과 오랜만에 함께 밤을 보내고 늦은 아침밥을 먹은 뒤 유람선 터미널로 향해 걸으며 무호가 혜련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오륙도 돌아오는 여객선이 있는데 우리 그거 탈까?"
"그래요. 근데 나 배 멀미 심한데.....?"
"괜찮아 한 시간 밖에 안 걸려."
"그래요."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여객선이 출발했다.
여객선이 출발하자 주변 물 위에 앉아 있던 갈매기들이 축하라도 하듯이 떼지어 여객선을 따랐다.
갈매기들은 선상에서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날쌔게 받아먹으며 여객선과 속도를 같이하며 날았다.
무호와 혜련은 갑판 위로 올라갔다.
그 곳엔 관광객들이 거의 없었다.
무호가 혜련의 어두운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소."
".........."
혜련은 먼바다에 눈을 고정시킨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당신 나랑 결혼 한 거 후회해?"
"전 제가 선택한 일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해 본 적 없어요."
혜련은 여전히 눈을 먼바다에 고정시키고 말했다.
"그럼 나랑 살기 싫은 이유가 뭔지 말해줘. 나화 살기가 싫으니까 날 자꾸 피하는 거 아닌가?"
"아니에요. 단지 내가 저지른 일이 겁나서 그랬어요. 사실 나 집나올 때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걷어서 왔어요. 거짓말하고. 당신한테 큰 피해가 올 거예요."
"알아 다 알고 있어. 그리고 모두 해결했어."
"액수가 많아요. 당신이 모르는 것도 있을 거예요."
"아니야. 다 찾아내서 모두 해결했어. 그러니 그 일일랑은 걱정하지도 생각지도 마. 괜찮아."
"전 나쁜 여자예요."
"당신이 나와 살기 싫은 것만 아니라면 다시 잘 살고 싶소. 하지만 나와 살기가 싫은 거라면 놔주고 싶소. 어차피 못 살 거라면 서로 갈 길을 가야지."
"아니에요. 당신이 마지막으로 용서해 준다면 잘할 거예요. 잘 할게요."
"그래요. 고맙소. 이제 행복하게 잘 삽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돈 들어가는 것 당신 불편하지 않게끔 당신 통장을 항상 채워 두겠소. 또한 아이들 문제 언제든 나와 편하게 의논해요. 난 당신의 남편이잖아. 그러니 당신의 아이들 또한 내 아이들이오."
"고마워요."
혜련은 금세 연극배우가 되어 눈물을 짜내고 있었다.
여객선은 어느덧 오륙도를 돌아서 다시 터미널로 향하고 있었다.
섬의 가파른 바위틈에는 소나무가 가까스로 버티고 서 있었는데 안내 방송에 의하면 그 소나무가 몇 백 년 묵은 소나무라고 하였다.
하찮은 미물이지만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토록 열악한 환경에서도 몇 백 년을 버텨온 작은 소나무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양분을 흡수하지 못해 몇 백 년을 살았어도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고 작은 아기 소나무의 모습을 하고서도 굳건한 자태로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참으로 경이로웠다.

도돌이표

혜련의 귀가로 인해 회사와 주변의 모든 것이 정상을 뒤 찾고 있을 무렵 그녀는 강치수로부터 그 많은 돈을 노름으로 모두 탕진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미혜는 학교에 납부금 등을 내지 못해 창피하다며 등교를 하지 않고 있었고 현국이 또한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골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간신히 학교를 나간다는 것이었다.
혜련이 틈틈이 아이들 통장으로 돈을 입금시켜 줬는데 강치수는 그 돈까지 모두 찾아 썼다는 것이었다.
혜련은 강치수에게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했다.
강치수가 오기 전에 혜련은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챙기고 자신의 통장을 챙겼다.

집에 돌아와 혜련의 편지를 발견한 무호는 이제 담담했다. 웃음마저 나왔다. 이제는 정말 괘씸했고 분했다.
무호는 이제 복수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래, 넌 사람이 아님이 분명하다. 더 이상은 베풀지 않으련다. 입만 벌리면 거짓으로 일관하는 너를 더 이상은 용서하지 않으리라. 사랑? 사랑이라....그래. 너의 거짓사랑으로 인해 상처받은 내가 어리석은 바보였다.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
박무호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박무호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다음 날 출근과 동시에 박무호는 정대일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사장니."
"그래, 거기 좀 앉아."
"네."
"성혜련을 찾아. 그러나 예전처럼 예의 갖출 필요는 없다. 잡아서 내 앞으로 끌고 와."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정대일이 나간지 한참이 됐는데도 박무호는 손이 떨려서 도무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죽인다는 것.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이제 이해가 됐다.
가끔 텔레비전 뉴스에서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내연관계에서의 살인 사건 뉴스를 보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이제 자신도 그렇게 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배신의 칼날은 점점 더 깊숙이 그의 몸 속으로 파고들었다.
가슴속으로, 머릿속으로, 아니 온 몸을 쑤셔댔다.
그는 자신을 원망했다.
불혹을 넘는 세월을 살아 온 자신이 어찌 그리 어리석게 거짓 사랑에 눈이 멀어 이토록 무참하게 유린당할 수가 있단 말인가.
갑자기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난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배꽃처럼 하얀 그의 마음이 보였다.
언제부터인지 그의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지었단 말인가.'
다음 회에 계속 됩니다.

이 게시물에 달린 코멘트 7
하하 2009.06.23 17:56  
할말이,,업네요...
꽃돌 2009.06.23 19:11  
남자분이 불쌍하네요...여성분은 너무하내요 ..배신이 얼마나 큰죄인지 그여성분은 모르시는가보네요 ...앞으로 여자으ㅢ 운명은 어떻게?????궁금하네요 다음을 기대합니다
한소낙비 2009.06.23 21:19  
성혜련은 전생에 악마였는가봐요. 죽어서 지옥갈거예요.
한소낙비 2009.06.23 21:25  
히어로님의 글에 빠져들었어요. 박무호같은 남잔 불쌍하구 참 어이없어요. 사람의 진정에 배신으로 보답하다니..... 하늘이 무섭지않는지...... 잘 읽고가요.다음회를 기다릴게요.
행복한삶 2009.06.28 09:35  
ㅠㅠㅠㅠ넘 안됏네요 박무효님이..... 혜련이란 그 못된여자는 아마도 어디가도 사람치급 받지못하고 살겁니다 그렇게 사람을 속이고 돈을 빼내는 사람들은 죽어도 편할지 못합니다 ㅠㅠㅠㅠㅠㅠㅠ 다음 회가 기대됩니다 하이로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히어로 2009.06.28 10:05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시고 댓글을 달아 주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날 되세요.
컴퓨터사랑 2009.07.29 15:46  
히어로님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즐거운 시간이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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