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장편 소설★서리꽃 사랑. 제3회

★창작 장편 소설★서리꽃 사랑. 제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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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 좋은 날에 [후반부]
"사장님, 저 정기삽니다. 제가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어떤 남자가 차를 가로막고 서서 사장님을 만나뵙겠다고 버티고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정 기사가 박무호를 막 내려 놓고 돌아 가려는데 강치수가 차를 가로막고 막무가네로 뗑깡을 놓고 있었다.
"누구라고 하던가? 물어 보게."
"현국이 아빠라는데요?"
박무호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 했다.
"그래, 안으로 모시게."
정기사가 데리고 들어온 사내는 그야말로 노숙자만도 못한 차림에 나이는 많지 않아 보임에도 앞니가 다 빠지고 얼굴은 찌들 대로 찌든 몰골을 하고 있었다.
"당신이 우리 마누라를 데리고 도망쳐서 같이 산다는 사람이요?"
사내는 다짜고짜로 무식함을 드러 냈다.
"당신이 혜련 씨를 칼로 찌른 사람이로 군요."
"...........뭐야!! 내 마누라 내가 찌르는데 뭔 개소리야! 새꺄!!"
"이봐요! 말 조심해!"
정 기사가 강치수의 멱살을 잡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정 기사의 손에 번쩍 들려 대롱대롱 매달린 채 강치수가 소리쳤다.
"안 내려놔. 이 새끼들이 사람 치네. 그래, 쳐라, 이 새끼들아. 매품이나 팔자."
"내려 놓게."
박무호의 말에 정 기사가 강치수를 내려 놓았다.
"내 마누라 어디에 숨겼어!"
강 치수가 기세도 당당하게 소리치며 나댔다.
"난 당신의 아내를 숨긴 일이 없소. 당신의 아내가 죽기 일보 직전에 발견해 살려 줬고 여태 보살피고 있었소. 거기에 대한 대가가 이런 것이요?"
"아니, 아니야. 나도 그 년하고 살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우리 아들하고 살 돈이나 위자료로 내 놓고 당신이 데리고 사시요."
강치수는 박무호가 혜련을 데리고 가라고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지 곧바로 본심을 드러냈다.
"위자료라.........위자료라면 성혜련 씨가 당신한테 받아야 도리인 것 같은데...?"
"개 소리 집어 치우고 위자료 안 내놓으면 경찰에 간통으로 신고 하겠어!"
"그렇게 해! 당장! 네가 인간이야!!"
성혜련이 강치수의 소란스런 목소리를 듣고 어느 새 2층 계단을 내려오며 강치수에게 소리쳤다.
"너는 인간이 아니야.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날 찾아. 간통? 한 번 신고 해 봐라. 난 아직까지 저 사장님하고 몸한번 섞은 일 없고 방도 따로 쓰는데 어째서 그게 간통이야. 신고 하면 다 조사 할 테니 신고 해. 그 보다 네가 먼저 들어 갈 거다. 지 마누라를 이꼴을 만들고도 얼굴을 들고 다니냐?"
"좋아, 한 번 살아 봐. 난 절대 이혼 안해. 그리고 현국이는 오늘부터 내가 데리고 있을 거야."
"맘대로 해. 이혼 해달라고 안했어. 이혼 소송해서 재판으로 할 거야. 네가 나를 살해하려고 한 사실만으로도 이혼 사유 된다는 거 쯤은 알지? 난 그래도 네 인생이 불쌍해서 병원에서 치료도 못받고 도망 나왔는데.....넌 인간도 아니야."
"저 년이 이제 완전히 돌았네. 그래, 한 번 잘 살아 봐라."
강치수는 그렇게 내뱉듯이 말하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강치수가 밖으로 나가자 성혜련이 미안해 어쩔 줄 몰라했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어쩌면 좋아요."
혜련이 울먹이며 쥐구멍을 찾는 심정으로 무호에게 사과 했다.
"괜찮아요.혜련 씨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혜련 씨가 욕했나요...괜찮아요. 올라 가세요,"
"저 인간 또 오면 어떡하죠?"
"내가 알아서 처리 할 테니 걱정 말아요. 그보다 혜련 씨, 내가 다시 일어설 돈을 빌려드릴 테니 애들 아빠랑 다시 재기해 보는 건 어때요. 그래도 세상에 태어나 한 번 맺은 부부의 연인데...저 사람 심정 이해 합니다. 자기 아내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죠....생각해 보고 그럴 생각이 있으면 말해요. 내가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충분히 도와 줄께요. 애들하고 다시 정상적인 가정 꾸리세요."
"싫어요. 그 건 생각해 볼 가치도 없는 일이예요. 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참았고. 아무리 맞아도 참았지만 절 살해하려고 흉기를 휘두른 사람과는 더 이상의 연을 이어가고 싶지 않아요. 아니, 그런 건 정말 생각할 가치도 없어요. 저희 아버지하고 동생들한테 이 사실을 다 밝히고 이혼 할 거예요. 소송할 거예요."
"그래요, 혜련 씨의 마음이 확고 하다면 그 것 역시도 제가 돕겠습니다."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공연히 늦었군. 어서 가봐."
"네, 편히 쉬십시요."
정 기사가 나가고 두 사람은 거실 소파에 마주 앉았다.
"혜련 씨, 우리 집에 소주 있어요?"
"네, 있지만.......술......하시게요?"
"네, 오늘 같은 날은 한 잔 해야 잠이 올 것 같군요."
"식사하시고 드세요. 그럼."
"아뇨, 밥 생각은 전혀 없군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무호 씨까지........"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고 전 늘 외롭거나 답답할 때는 술을 벗삼았어요.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벌써 십 수년이나 됐네요.하하하."
얼마 되지 않아 혜련이 소주와 안주를 들고 나왔다.
그녀는 정말 음식을 빨리하면서도 맛있게 잘 했다.
"제가 한 잔 따라 드릴께요. 받으세요."
"네,"
박무호는 소주잔을 혜련에게 내밀었다.
"혜련 씨도 한 잔 하실래요?"
박무호가 잔을 내려 놓으면서 말했다.
"네. 마시고 싶어요."
"잔 가지고 오세요."
"그냥 주세요. 그 잔으로."
"한 잔으로 같이 마시면 정들어요. 정들여 놓고 책임지지 않으면 저 대책없는 사람이에요."
"책임 질께요. 주세요."
"정말이에요?"
박무호가 웃으며 말하고 혜련에게 잔을 내밀었다.
"무호 씨."
"........."
박무호는 대답 대신 그녀의 눈을 보았다.
"저랑 살고 싶다는 말씀 아직 유효한가요?"
"아직이 아니라 영원히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잖습니까?"
"저 데리고 살아 줘요. 저 부족한 거 많고 보잘것 없는 여자지만 잘 할께요. 정말 잘 할께요. 저도 사실 무호 씨 욕심 많이 냈어요. 잘 하고 잘 살게요. 저 데리고 살아 주세요."
"데리고 살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살자고 하세요. 제 청혼을 받아 들이겠다고 하세요. 데리고 살아 달라는 것은 사랑을 구걸하는 거 같아서 듣기가 좋지 않군요."
"그래요. 함께 살아요. 저도 사실 당신 사랑했어요. 아니, 사랑해요. 이런 감정 가져 본 적이 없었던것 같아요. 사랑해요. 이 마음 정말 변치 않을 거예요.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어요. 사랑해요."
"진심인가요?"
"네, 전 사랑을 그렇게 함부로 고하지 않아요. 진심입니다. 이 마음 무덤까지 가지고 갈거예요. 제 목숨보다도 더 사랑해요. 저도 무호 씨가 너무나 좋았지만 여자이기에 표현할 수 없었어요."
"그래요. 믿겠습니다. 어떠한 한 순간의 감정의 치우침으로 고하는 사랑이 아니라 믿습니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군요."
"빠른 시일 내에 아버지 찾아 뵙고 말씀 드릴께요."
"근데 현국인 그 사람하고 있어도 괜찮은 건가요?"
"어쩌겠어요. 그 것도 다 지들이 타고 난 팔자인 것을........그 사람하고 있으면 애 꼴이 또 엉망이겠죠."
"아이들한테는 아빠보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텐데......"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저도 이제 제 인생을 살아 보고 싶어요. 그렇게 할 거예요."
"아무튼 애들 문제는 내가 연구해 볼게요. 너무 걱정 말아요."


박 무호는 사무실에서 비서 한여진에게 인터폰을 넣었다.
-네, 사장님.
-정 기사 좀 들어 오라고해요.
-네, 사장님.
정 기사가 들어 오기 전에 여진이 들어 왔다.
여진은 들고 들어 온 쇼핑백을 무호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데?"
박무호가 의아해 하며 여진에게 물었다.
"사장님 여름 내의 한 벌 샀어요. 색상이나 디자인 맘에 안드시면 말씀하세요 바꿔드릴께요. 사이즈는 제가 눈 짐작으로 골랐는데 어떨지 모르겠어요."
"........."
여진의 뜻밖의 당돌함에 박무호는 아무 말 못한 채 여진이 내밀고 있는 쇼핑백을 받아 들었다.
"댁에 가실 때 꼭 가지고 가셔서 입으세요."
"그래, 고맙긴 한데.......오늘이 내 생일인가? 내 생일은 겨울인데......?"
"쇼핑하다가 갑자기 사장님 생각이 나서 하나 샀어요. 그냥 입으세요. 그리고 입으실 적마다 제 생각 해 주세요?"
"허.......그래, 알았어. 고맙게 입을께."
그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 왔다.
"네에."
박무호 대신 여진이 대답했다.
문이 열리고 정 기사가 들어와 허리를 굽혔다.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그래, 거기 앉아."
여진이 무호의 눈치를 살피더니 방을 나갔다.
"정 기사."
"네, 사장님."
"내가 자네한테 부탁할 일이 좀 있어서 불렀네."
"말씀하십이요, 사장님."
"그래, 어제 그 사람 말이야."
"네?"
"저녁에 집에 왔던 사람."
"네, 현국이 아빠란 사람 말씀입니까?"
"그래, 그 사람 좀 찾아서 데리고 와. 저녁까지 못찾으면 내일이라도."
"네, 알겠습니다."


퇴근 시간이 돼 갈 무렵 정 기사 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사장님, 전데요. 지금 강치수 씨 만났는데 어데로 모시고 갈까요?
-회사로 모시고 와.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박무호는 여진을 불렀다.
"한 비서, 퇴근하지...."
"네, 서류 정리하던 것 마져 하고 가겠습니다."
"아니야, 오늘 내가 여기서 만날 손님이 있는데 나와 단 둘이서 만나야 할 손님이라서 그래, 업무보고도 내일 하게."
"........알겠습니다. 그럼 저 먼저 들어갈게요."
한여진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방을 나갔다.
박무호는 담배를 입에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뿜으며 어려운 일을 결심하듯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래,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일지도 모르지. 어차피 나와 함께 살 여자라면 그 사람의 마음이 편해야 내 마음도 편하지.....'
그렇게 얼마 동안 상념에 빠져 있었을까.......
노크소리가 들려 왔다.
똑!똑!똑!
노크소리는 박무호를 상념 속에서 끄집어 내기에 충분했다.
"들어와요."
문이 열리더니 정 기사가 강치수를 데리고 들어섰다.
"모시고 왔습니다. 사장님."
"그래, 수고 했어. 밖에서 좀 기다리게."
"네, 사장님."
정 기사가 나가자 강치수가 다짜고짜 말했다.
"날 왜 보자고 한거유?"
"우선 좀 앉읍시다."
박무호가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박무호가 먼저 자리에 앉자 강치수가 엉거주춤 따라 앉았다.
"본론부터 말하죠."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당신이 어제 성혜련 씨와 살기 싫으니 위자료를 달라고 했소?"
"그런데?"
"그래, 위자료라는 명칭은 맞지 않는 것 같고 위로금을 얼마나 주면 이혼을 해 주겠소? 말해두지만 이혼을 해 달라고 사정하기 위해 준다는 건 아니오. 이혼은 소송을 걸면 당연히 되는 거지만 단지 당신이 사업을 실패했고, 또 어차피 서로가 더 이상 살 수 없는 것이라면 헤어지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하오. 하지만 어린 현국이가 있으니 당신도 일어설 돈이 필요할 거요. 현국이가 편하게 잘 살고 학업에 지장이 없어야 혜련 씨또한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벼울 것 같아 내가 그리 하겠다는 거요."
박무호가 강치수를 압도하며 말했다.
"그래, 얼마나 줄 생각이슈?"
"당신이 달라고 했으니 당신이 제시해 보이오. 적절한 선이 된다면 내가 그리 해 보겠소."
"2억 주슈."
"음.............2 억이라....하긴 그 정도는 가져야 작은 사업이라도 시작하겠지요. 좋소. 그 돈만 주면 깨끗이 이혼 해주고 더 이상 방탕한 생활 하지 않고 재기 하겠소?"
"재기를 하든 굶어 죽든 깨끗하게 도장찍고 당신들 앞에 안 나타 날 테니 주기나 하슈."
"아니, 그렇게 무책임한 대답은 안돼요. 그리고 조건이 하나 더 있소. 아이들은 언제든 엄마가 원하면 만나서 얼굴 보고 용돈이라도 주고 뒷바라지를 할 수 있게 해야 하오. 부모자식간은 천륜이잖소. 그렇게 하겠소?"
"알았시다. 그리 할테니 돈은 언제 줄 거요?"
"반은 내일. 그리고 나머지는 이혼한 후에. 그리고 아이들을 만나게 하고 뒷바라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각서를 써야하오."
"알았수. 그렇게 할테니 돈이나 주슈."
돈, 돈이란 게 무엇이기에 돈을 준다는 말에 강치수는 순한 양이 되고 말았다. 그러한 현실에 박무호도 마음이 아팠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박무호인들 왜 자기 돈이 아깝지 않겠는가. 하지만 박무호는 혜련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혜련이 아니었어도 그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분명 도와 줬을 사람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그랬고 스타일이 그랬다. 선배, 친구, 후배, 친 인척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카멜레온 사랑




강치수를 사무실로 오게 한 다음 날 박무호는 강치수의 통장으로 1억원을 이체시켰다.
퇴근 후 박무호는 혜련을 불렀다.
응접실 소파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오늘도 변함없이 소주 병을 가운데에 놓고 있었다.
"혜련 씨, 당신의 의사를 묻지 않고 내가 행한 일이 있는데 이번만 내 뜻에 따라 줘요."
"이번 뿐이 아니라 영원히는 당신 뜻을 못따를리 없지만 어떤 일인데요?"
박무호는 혜련에게 강치수와의 일을 모두 얘기해 줬다.
"왜 그랬어요. 그러지 않아도 이혼 할 수 있는데...."
"이혼 때문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내 마음 몰라요? 다 같이 자식을 기르는 부모의 마음."
"알아요. 하지만 적은 돈도 아니고 그 큰 돈을....그 인간 정말 뻔뻔하기도 하네....아무튼 고마워요. 무호 씨는 정말 복 받을 거예요."
"복 받으려고 하는 일도 아니오. 난 당신이 없으면 이제 안돼요. 나도 어쩌다 이렇게까지 여자에게 빠져들었나 모르겠소. 이 나이에 사랑이란게 내 가슴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해요. 난 다신 사랑이란 걸 할 수 없을 줄 알았거든요. 나 이제 당신 없으면 정말 안돼요. 나 배신하지 말아요. 정말 우리 무덤에 갈 때까지 서로 마음 변치말고 잘 살아요."
"그래요, 고마워요. 보잘것 없는 저를 사랑해 줘서. 무호 씨는 저의 목숨이에요. 정말 무덤에 가는 날까지 변치않고 사랑할 거예요. 사랑해요."
혜련이 일어나서 무호의 옆으로 와 앉았다.
무호는 혜련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이상할 정도로 두 사람의 사랑은 급진전 되었다.
두 사람 모두 너무나도 쌓여버린 외로움 때문일 것이었다.
사춘기의 어린 아이들도 아니련만 두 사람의 가슴 속에서는 불같은 사랑이 타오르로 있었다.
박무호나 혜련 모두 불혹을 넘긴 나이에 자신들에게 사랑이란 감정이, 아니 그 어떤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감정이 남아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해보질 못했다.
사랑이란 것은 십대의 사랑이나 이 삼십 대의 그것이나 불혹을 넘긴 나이의 그것이 모두 똑같은 것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그렇게 언약하고 언약했다.
서로가 마음아프게 하지않고 늘 아끼고 사랑하며 상대방이 기쁘면 함께 기뻐해 주고 상대가 슬프면 함께 울어주며 그렇게 사랑하다가 이 세상을 등지고 저 세상으로 가는 그 순간 까지 그 사랑 지키며 살기로...............

 
★흔들리는 나무


토요일이었다.
이제 이틀 후면 혜련과 강치수는 법원에 가서 이혼 재판을 받고 서로 완전한 남이 될 것이었다.
혜련과 강치수가 완전한 남이 된다는 것은 박무호와 혜련의 또다른 시작을 의미하기도 했다.
퇴근을 하려고 하는데 비서 한여진이 박무호 방에 들어와 말했다.
"사장님, 오늘 시간 어떠세요?"
"시간? 왜, 무슨 일이라도 있다?"
박무호가 여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오늘 생일이에요. 찾아 줄 사람하나 없이 혼자서 지낼 생각을 하니 너무 서글퍼서요."
고개를 떨군 채 말하는 여진의 모습에서 박무호는 이상한 연민 같이 느껴지고 있었다.
"한여진 씨 오늘 생일이었어? 이거 미안하군. 몇 년씩이나 함께 있었는데도 내 식구 생일하나 모르고 있었네."
"아니에요, 사장님. 사장님께 제가 단한 번도 생일을 말씀드린 적이 없었어요. 몇 년 동안......저도 몇 년 동안은 생일 없는 사람으로 살았어요. 그러고 싶었구요. 하지만 올해는 이상하게 서글퍼지네요. 저도 이제 삼십대가 되니 늙기 시작하나봐요. 사장님."
"그래, 오늘 같이 저녁이라도 하지. 마침 오늘은 특별한 스케즐도 없고, 설령 스케즐이 있다해도 취소해야 할 이이군. 그래, 준비하고 나가지."
박무호는 정 기사를 먼저 퇴근하게 하고 여진의 차를 타고 회사를 나왔다.
"그래, 어디 좋은 곳을 알면 말해요. 분위기 있는 데서 먹어야지. 오늘 같은 날은......."
박무호의 말에 여진은 운전대를 잡은 채 대꾸했다.
"사장님, 오늘은 저의 집에서 모시고 싶습니다. 사람들 많은 곳은 시끄럽기만하고 분위기 찾아 봐야 먹고 나면 본전 생각 나더라구요.....호호호. 제 집으로 가세요. 제가 맛있게 저녁 해 드게요."
"그래, 뭐 그 것도 괜찮겠군."
아파트 주차장에 여진이 주차를 하고 두 사람은 상가로 내려갔다.
"사장님 좋아하시는 것 제가 다 아니깐 따라오세요. 시장봐서 맛있게 해 드릴게요."
여진이 앞장서 걸으며 기분이 달뜬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박무호는 마치 정부의 집에 온 사람처럼 자꾸만 뒷통수가 뜨거웠다.
"사장님, 이 거 하나만 들어주세요."
여진은 시장본 봉투를 박무호에게 건네며 마치 아내가 남편한테 하듯 그렇게 말했다.
박무호는 왠지 못된 짓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자꾸만 사람들의 눈을 의식했다.
엘리베이터를 내린 여진은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사장님."
여진이 먼저 들어서며 박무호에게 말했다.
박무호는 낯선 여인의 집을 들어와 보는 것이 처음이라서 왠지 어색했지만 색다른 신비감이 있었고 그가 중학교 때 동네 누나를 따라 그 누나의 방을 들어갔을 때처럼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여진은 시장봐온 봉투를 냉장고에 정리하며 박무호에게 말했다.
"앉아서 잠깐 텔레비젼 보시고 계세요. 빨리 할게요. 저 이래뵈도 음식 잘해요."
여진은 아직도 목소리가 달떠서 흔들리고 있었다.
박무호는 소파에 앉아 집안 여기저기로 눈을 옮겨 살폈다.
작은 아파트지만 깨끗하게 정리 되어 있는 것이 그녀의 성품을 그대로 드러나게 했다.
여진은 옷을 갈아 입고 나와 이 것 저 것을 만들면서 말했다.
"사장님, 저고리 벗으시고 넥타이도 푸세요. 불편하시잖아요."
"응, 그래요."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 여진은 꽤 여러가지음식을 만들어서는 식탁에 올려놓으면서 박무호에게 오라고 했다.
"어이구.......이거 정말 실력이 대단한데?"
박무호의 칭찾에 여진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맛이 있을 지 모르겠어요."
"눈으로 먹어 보니 맛이 있는데.....하하하."
여진이 박무호에게 와인 잔을 건내자 박무호가 말했다.
"소주는 없지?"
박무호의 말에 여진이 눈을 깜박이고 바라만 보자 박무호가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얼른 말을 바꿨다.
"하하하. 와인이 좋지....."
"한 잔만 하시고 꼬냑으로 드릴게요."
박무호가 잔을 받아 들자 여진이 와인을 따랐다.
"미스 한도 한 잔 하지."
박무호가 말하자 여진이 잔을 들어 박무호 앞으로 내밀었고 박무호는 여진의 눈을 보며 와인을 따랐다.
"자 건배한 번 할까?"
짠-
"생일 축하 해. 늘 건강하구 올해는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 가 꼭, 더 늦으면 안돼. 알았지?"
"............"
여진은 대꾸하지 않았다.
여진은 자꾸만 서글퍼 졌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 그러면서 꼭 하지 않아도 될 말, 시집을 가란다.
여진이 입사하기 전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여진은 박무호를 보는 순간 그 사내의 뒤에 아름다운 서광이 비췄고 그 빛 앞에 선 박무호는 정말 백마 탄 왕자보다도 더 늠름하고 근사했다.
그녀가 고아원에서 그렸던 아빠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엄마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어떻게 출생을 했는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녀는 고아원의 추운 방에서 잠이 들 때면 아버지의 모습을 혼자서 그려 보곤 했었다.
생일 또한 그저 호적에 실린 날짜로 알고 있을 뿐 실제 자신이 태어난 날조차도 모르고 살아 왔다. 그녀는 무슨일이 있어도 공부를 해서 성공을 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죽을 각오로 노력했고 그 결과 성적은 늘 전교 일 이등을 다퉜으나 고아원 출신의 그녀에겐 따뜻한 축하나 격려 한 마디 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은 전교 일 등 한 번 하면 부모가 다 찾아와 난리를 치르곤 했지만 자신은 그렇질 않았다.
그녀는 그 때부터 세상을 살아 간다는 것이, 사회의 구성원이 돼 간다는 것이 이론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 했다.
그러나 그녀는 대학까지 장학금을 받으며 졸업했고 대기업은 아니지만 기업의 중요한 업무를 맏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성공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와 같은 고아원에서 자라온 선배나 친구들을 보면 사춘기를 겪으면서 모두 빗나가기 일쑤였다. 그녀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월급에 반은 자신이 자랐던 그 곳의 아이들에게 후원금으로 내어 놓았었다. 그 일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녀가 우연히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정말 세상이 싫었다. 고아원의 간부들이 국가 보조금과 사회 단체에서 들어오는 기부금 등을 거의 다 착복해 왔다는 사실 앞에서 그녀는 정말로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저녁 식사는 끝났고 벌써 술자리도 몇 시간 째.
박무호는 꼬냑을 두병이나 비우고 세 병째 마시고 있었다.
박무호는 정신이 몽롱해졌다.
"미스 한, 한잔 하지....."
박무호가 발음도 되지 않는 말로 여진에게 말하고 막 잔을 들려는 차에 박무호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
박무호가 반은 감긴 눈으로 휴대 전화를 들여다 봤다.
혜련이었다.
-여보세요.
-저예요.
전화기 저 쪽에서 혜련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 왔다.
-네, 그래요. 내가 전화를 했어야 했는데.......미안해요.
-어디 계세요? 자정이 다 돼 가는데........
혜련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아, 나. 나 지금 한여진 씨 집에 있어요. 오늘이 여진 씨 생일이라서 여기서 한 잔 하고 있어요.
박무호는 그렇게 말했지만 혜련은 혀꼬불어진 그의 말을 반도 못알아 들었다. 한여진의 집에서 한 잔 하고 있다는 것 밖에는....
-과음하지 마세요.
-그래요.
전화를 끊고 박무호는 혜련에게 말했다.
"내 옷 좀 줘요. 택시 좀 부르고. 내가 너무 취했네. 미스 한 한테 실수 많이 했군."
"주무시고 가세요. 사장님 많이 취하셨어요."
"내가 취했다고 이성을 잃는 사람은 아니니 걱정 말아요."
"사장님, 침대에서 주무세요. 전 작은 방에서 자면 돼요. 만취한 사장님을 보내드릴 수 없어요. 그럼 제가 불안해서 밤새 못자요."
그렇게 말하는 여진이 박무호의 눈에 오늘따라 여성스럽게 보였다. 그녀의 미모는 뛰어났지만 회사에서 공적으로 대할 땐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사석을 통해 새롭게 엿보였다.
"내가 여기서 자는 것은 실수하는 것이지...."
"따로 자는데 뭐가 실수에요? 전 못보내 드려요."
여진은 박무호를 부축여 침실로 들어 갔다. 그녀의 침대에서는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여진은 박무호를 침대에 뉘었다.
"나 씻어야겠어. 그래야 술도 좀 깨고 잠이 와."
"그러세요."
여진은 옷장을 열었다. 그 곳에는 마치 언제가 될 지 모르는이 날을 위해 준비해 두기라도 한 듯 한 번도 입지 않은 깨끗한 남자 잠옿이 정성스레 걸려 있었다.
"씻으시고 갈아 입으세요, 사장님. 그 누구도 입지 않았던 거예요. 사장님 거예요."
여진이 잠옷을 내밀며 말했다.
"............"
박무호는 아무말 없이 침대에 걸터 앉아 잠옷을 들고 있는 여진을 올려다 보았다.
샤워를하고 침대에 누우니 잠이 절로 왔다.
박무호가 잠드는 것을 확인하고 여진도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여진은 31년 동안 지켜온 순결을 담고 있는 성숙한 자신의 미끝한 육체를 거울에 비쳐보며 박무호를 떠올렸다.
여진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는 박무호가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여진은 온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살며시 요염한 육신을 박무호 옆에 뉘였다.
여진은 눈물이 났다.
여진은 손을 살며시 잠들어 있는 박무호의 가슴에 올려 놓았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거야!'
여진보다 먼저 눈을 뜬 박무호는 전라의 몸으로 자신의 옆에 누워 잠들어 있는 여진을 내려다 보며 깜짝놀라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어찌된 일일까.......내가 먼저 씻고 잤는데.......그래, 난 그냥 잤어. 아무일도 없었어.'
하지만 박무호도 남자인지라 전라의 몸으로 잠들어 있는 젊은 미녀를 내려다 보고 있으려니 온몸에 불이 붙었다.
남자는 사랑을 전재로 섹스를 하지 않는다. 남자는 동물 적 본능에 의해 사랑이 없는 육신의 섹스를 할 수도 있다. 남자는 가슴으로 섹스를 하고 여자는 머리로 섹스를 하는 것이다. 남자는 몸이 먼저 간 다음에 마음이 가는 수도 있지만 여자는 마음이 움직여야 몸이 가는 것이다. 바꿔말하면 여자는 내 남자라고 생각이 들 때 옷을 벗지만 남자는 아침에 자신의 옆에서 잠들어 있는 여자를 보면서 내 여자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박무호의 몸은 점점 뜨거워 왔다. 아직은 그에게도 젊음이 있기에......
박무호는 갑자기 혜련이 떠올랐다.
그녀와의 굳은 맹세, 굳건한 약속!
그 것을 저버려선 안 되는 것이었다.
물론 혜련과 아직 단 한 번도 몸을 섞은 일이야 없지만 꼭 몸을 섞어야만 사랑의 맹세를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박무호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뛰어 들어 갔다.
그는 찬물을 자신의 온 몸에 뿌렸다. 그의 몸이 젖고 또 젖을 때까지.......
샤워를 마치고 욕실을 열자 여진이 잠옷바람으로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여진은 아무 말 없었다.
박무호 또한 아무 말 없이 부끄러운 자신의 몸을 감추며 수건을 받아들었다.
"사장님, 저 여자로서 매력 없어요?"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만지는 박무호의 등에 대고 여진이 물었다.
박무호는 거울 속에서 여진과 눈을 맞추고 말했다.
"미스 한이 왜 매력이 없어. 여성으로서 취고지. 몸도 마음씨도....."
"그럼 왜 절 자꾸 피하세요?"
"예쁘고 마음에 든다고 해서 모두 가질 순 없는 거야. 성인이면 생각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지."
"저 여자로서 매력 있으시면, 그러면 그냥 절 가지세요. 제가 사장님 앞길 막진 않아요. 전 사장님을 원해요. 제가 삼십 년을 넘도록 지켜 온 순결,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어요. 전 그뿐이에요. 다른 거 아무 것도 욕심 없어요."
"나도 미스한 좋아, 마음씨 착하고 예쁘고 똑똑하고 다 좋아. 하지만 난 곧 결혼해.혜련 씨하고. 그러게 되면 미스 한만 상처 받게 되는 거야."
"사장님, 전 그런 욕심 없어요. 섹스란 걸 꼭 결혼을 전재로 행하나요? 전 그런 욕심 조금도 없어요. 정말이에요. 그저 죽는 날까지 사장님만 바라보고 사장님만 사랑하며 곁에만 있게 해 주심 돼요. 애첩도 좋고 애인도 좋아요."
"미스 한."
박무호는 돌아서서 여진을 꼭 껴안아 주었다. 그 것은 아버지가 딸에게, 큰오빠가 막내 동생을 달래는 그것과 같은 마음에서였다.
여진은 박무호의 넓은 가슴으로 파고들어 하염없이 그 가슴 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자, 이제 그만 가 봐야겠어. 성희도 내려와 있을 텐데......"
박무호가 여진을 떼어 내려 하자 여진은 엄마에게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젖먹이 아이처럼 있는 힘을 다해 더욱 세차게 파고 들며 말했다.
"조금만요! 조금만 더요. 부탁이에요."
박무호는 그녀의 어깨를 다시 껴안아 주었다.
※다음회에 계속 됩니다.

이 게시물에 달린 코멘트 2
행복한삶 2009.06.12 13:49  
우와~ 정말 감동적인데....참말로 잘읽엇슴니다 다음회가 기대되네요 빨리 달아주세요 ^*^
우렁이각시 2009.06.12 15:20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