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등학교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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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등학교 추억
어느덧 무더운 여름은 다 저물어가고 벌써 가을이 다가오네요,
게시판의글을 보니 나에게도 잊을수 없는 지나간 추억들이 하나 둘 새롬 새롬 떠오르기 시작하네요,
30여년이란 세월을 살아보니 가장 나의 맘을 아프게 하는것도 추억이고 기쁘게 하는것도, 해맑게 해주는것도 추억인것 같네요,
새학기
북한에서는 해마다 9월이면 학교 개학이죠,
인민학교(한국의 초등학교)에서 고등중학교로 올라가던 날 앞가슴에 몇 학년 몇 반 누구 라고 새겨진 해바라기 댕기 달고 고등학교 언니들의 환영과 축복속에 씩씩하게 노래 부르며 고등학교 정문에 들어서던 그시절, 한갓 철부지에 불과 했던 우리들...
가슴에 끓는 피를 조국에 바치리
영예로운 별빛은 내가슴에 빛난다.
나가자 인민군대 용감한 전사들아
인민의 조국을 지키자 목숨으로 지키자,
갓 10대를 넘어설가 말가 한 어린나이의 학생들이혁명가요를 부르며 4열행대(4줄로 길게 늘어서서)를 맞추어 모임 장소(등교전에 모두 모여서 줄을 지어 가려고 임시로 정해든 장소)에서 부터 학급반장의 힘찬 구령소리를 들으며 손과 발을 맞추어 학교 운동장까지 씩씩하게 행진하며 다녔던 그 시절,
모임장소에 등교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면 먼저 온 애들끼리 공기놀이도 하고 뜀줄(줄넘기)도 하고 망차기도 하면서 즐겁게 보내던 생각도 나고 모임장소 근처에서 두부장사 하는 아줌마들 보면서 자본주의사상에 물들었다며 두부다라(그때는 큰 다라에다가 두부를 10모 정도 물에다 담궈놓고 집주변에서 파는 분들 몇 몇 있었거든요)에 모래를 퍼붓고 도망가던 생각도 난다. 그때 두부장사 아줌마들은 우리들에게 꾸지람도 맘대로 못하셨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이 그때 당시 북한사회에서 볼 때 소리낼수 있는 일은 아니였으니깐.
학교에 도착하면 정문앞에 단위원들이 규찰대 완장을 두르고 손에 기록부까지 들고 옷차림 정검과 인원정검을 하고 들여보내군 했었죠.
우리가 교실 도착하기 전에 먼저 청소담당 학습반 친구들이 미리 청소를 깔끔하게 해놓고 우리는 그들이 미리 정리해 놓은 교실에 들어서서 독보학습을 하고 공부시작을 기다렸죠.
3교시 끝나면 모두 운동장에 모여 음악에 맞추어 율동체조를 하고 소년단 간부들은 소년단실에 모여서 구역사로청에서 내리먹이는 토끼가죽 꼬마계획 생활총화 분단총회 관련 임무를 받기도 하고 과제수행을 완수 못한 간부들은 추궁을 받기도 하면서 다시 4교시 수업에 들어가고 6교시 끝나면오후반 친구들에게 교실을 내주고 우리는 밖에 앉아서 분단위원장으로부터 과제를 전달받기도 하고 하루 총화를 하고집에가서 밥 먹고 오후 3시까지또 나와서 주변 농촌이나 학교청소 등 일하러 다니군 했죠.
주변농촌으로 동원나갈때는 분조별로 구루마를 끌고 오게 하는데 집집에 구루마가 다 있는게 아니여서 7명의 분조친구들이 돌아가면서 구루마를 끌고 오게 했죠.
하루는 그날도 공부 끝나고 오후 작업때문에 구루마 조직을 하는데 그날 순번이 된 친구가 구루마를 못가져오겠다고하는거에요. 그러자 분조장이 뭐라고 막 야단치려다가 그 친구 코밑에 코피자국을 보더니 "너 오늘 코피나와서오늘 하루만 봐줄게" 하더라구요.그런데 그 친구막 웃더니 공부시간에 수채화 작업하다가 빨간색 수채화가 코밑에 뭍은걸 몰랐다는거에요. 그래서 우리 분조 전체가 배 끌어안고 웃어대던 기억도 있었답니다.
잊지못할 고등학교 선생님들
1년 365일 하루도 그칠 새 없었던 아버님의 과한 폭력으로 말미암아 몸에 맞은 멍자국이 아물새 없었던 제가,또 지나친 가난때문에학교에서 나무하러 갈때나 등산 갈때마다 쌀이 없어 도시락도 제대로 못싸갔던 제가 그래도 주눅들지 않고 떳떡하게 살아 나갈 수 있었던건 우리 학교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때문이었답니다.
친구들의 질투섞인 부러움속에, 선생님들의 과분하신 사랑속에 집에서 폭행으로 받은 스트레스가 스스르 녹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는 정말 행복한 학생이었죠.
지금도 기억을 떠올려보면 고등학교 올라가던 둘째 날 신입생들 국어, 수학, 이 두 과목 시험을 치르고 나서 발표가 나오기만을 발을 동동 구르며 학교 게시판앞에 성적순위가 나오기만 기다리는데 순위를 붙이시려고 나오시던 국어분과장 박*남 선생님께서 갑자기 “김**학생 어디 있어요, 어디” 하면서 저를 다급히 찾으시더니 제가 "선생님 저에요" 라고 수집움과 함께 호기심에 가득찬 눈으로 말똥 말똥 쳐다보는 저에게 1등 했다고 꼭 껴안아 주셨었죠.
고등학교4학년 때인가 구역별 노어 경연에서 1등을 하고 모범출연을 할때도 강당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내가 나오자 마자 나를 품에 꼭 안아주시며 기뻐하셨죠.( 솔직히 그때 노어경연 너무 하기 싫었는데 노어선생님이 집에도 안보내고 야단치면서 빡세게 시키시는 바람에 나온 결과였죠. 다른 학교 친구들은 자기 이름이 불리워 질까봐 가슴 조이는데 우리 학교 친구들만은 막 서로 자기 이름이 불리워 지기만을 기다리며 얼마나 ...)
이런 경연 말고도 '이동도록 통달경연' '네가지 시 다섯가지 노래 경연' 뭐 무슨 경연이 그렇게 많은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시간에 이런 쓸데없는 경연 끌려다니느라 고생도 참 많았죠.
그리고 머리가 반질반질 했던도서관 아바이(제가 도서실만 찾아가면 항상 밝게 웃으시며 반겨주셨던 60대 할아버지) ,
교장선생님(항상 학교안에서나 학교밖에서 우연히 지나치더라도 무조건 가던길 멈추시고 저를 친손녀마냥 너무너무 이뻐해주셨던교장선생님.),
여자 체육선생님(엄마 또래 씩씩한 아줌마. 항상 저만 마주치면 체육관 데리고 들어가 맛있는것도 주고 노래랑 춤 보고싶어 하셨던 선생님),
소년단 지도원선생님(당시 24살, 항상 배가 고프셨는지 밀쌀로 빵을 바꿔가지고 오셔서는 늘 소년단실에서 살다시피 하던 저와 나눠 드시던, 가끔은 저를 살짝 질투도 하시던 처녀선생님),
책임지도원선생님(늘 우리학교 자랑이라 늘 저를 대견해 하시며 도, 시, 구역사로청 회의때마다 저를 자랑하며 다니셨던,,,
겨울에는 추위를 견디지 못해 늘 올라가 있는 제 어깨를 보시며 가슴아퍼 하시고 어깨를 쭉 펴고 다녀야 한다고 늘 신경써주시고 아프면 아파할세라, 재미있는 이야기로 나의 얼굴에 웃음만을 주시려고 애쓰시던 저에게 행복의 앤돌핀을 불어넣어주셨던 아빠같은 선생님. 조금만 뭘 잘해도 크게 보시고 늘 잎에서 칭찬을 놓지 않으셨던 선생님) ,
우리반 담임선생님 (비록 쓸데 없는 경연이란 경연은 다 참가 시키시고 학급에서 제기되는 모든 서류작성부터 특간호, 선서문 기록 등등다 시키셨지만 그만큼 저를 대견해 하시고 믿어주시고 가난한 제가 안쓰러우셔서 오후 작업도 가끔씩 빼주시던 완전 미인이셨던 우리반 담임선생님) 그 분들 한분 한분 이름을 여기에 기록은 못하지만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추억과 사랑과 행복을 주셨던 우리학교 선생님들, 그분들이 주셨던 사랑 어찌 글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단짝 친구
**옥 우선 내 옆자리에 앉아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같이 공부했던 딱친구(북한에서는 단짝친구를 딱 친구라고 한다.)
나에게는 먼 친척이기도 했던 그의 집은 참 잘 살았다, 아빠 잘 든 덕에 공부를 잘 못해도 우리학급 분단위원장(학급 총책임자)직을 맡아 했다, 시험 볼때는 내가 1안을 보면 걔도 1안을 보았고 내가 2안이면 걔도 역시 2안이였다.
어떤 때에는 걔가 미처 다 못 베끼면 내 시험지를 걔앞에 놓고 걔 시험지를 내가 대신 작성해 주곤 했다, 그리하여 내가 100점이면 걔도 100점, 내가 99점이면 걔도 역시 99점, 그래도 선생님들은 보고도 못본척 넘어가셨었다. 왜? 그래야 걔 아버지 (큰 이름있는 회사 초급당 비서) 한테 도움을 받을 수 있는것이다. 지금도 생각나는것은 가끔씩 우리학교 선생님들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랑 걔한테 걔네 아빠 회사로 심부름을 시키셨다. 그래서 우리는 수업도 뚜꺼먹고 걔네 아빠 공장에 같이 가서 해결해 왔었다. 그곳에만 가면 이쁜 처녀,총각들도 많이 볼 수 있었고 맛있는것도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학교 선생님들 열이면 열 다 걔네집 신세를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또 학급에서 제기되는 큰 문제들을 모두 걔네 아빠가 풀어주군 했다.
나는 걔의 성장과정을 쭉 보아오면서 나무만 키울 수 있는게 아니라 사람도 키울 수 있다는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하나도 잘 하는것 없던 애가 점점 선생님이 반간부도 시키고 이것 저것 책임을 지우니 졸업하던 해에는 정말 이전에 걔가 맞냐 할 정도로 똑똑해 졌다.
결국 학급에서 대학에도 혼자 갔다. 걔 말을 들으니 언니(외화상점 판매원)가 많은 노력을 했나 보았다. 지금도 대학입시 시험 앞두고 나하고 해수욕장 주변 호수보트장에서 보트 타며 놀던 생각이 난다. 보트를 타면서 놀다가 심술굳은 오빠들이 보트를 자꾸 건드려서 물에 빠질까봐 둘이서 붙들고 엄살을 부리며 소리 지르던 그 날 잊을 수 없다.
내가 한국에 오기전까지 내 생일날 마다 집에서 엄마(고등학교때 내가 가정교사처럼 걔네 집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공부를 가르쳤었는데 걔네 엄마는내가 못산다고 정말 미워했었다) 몰래 맛있는거 해다가는 나를 불러내 대학가에서 맛있게 먹고 놀던 생각이 나곤 한다.
한국 오기전 내 생일날에는 나때문에 음식 싸들고 뻐스 타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매달렸는데 아빠가 선물로 사줬던 손목시계를 잃어버렸다. 아빠가 사준거라며 너무 아쉬워 하던 그 친구 얼굴이 생생하다. 그날 대학가에서 같이 생일을 쇠면서 너두 대학 같이 왔으면 좋았을걸 하면서 아쉬워 했었다.
공부만 잘하면 대학에서 제기되는 과제 같은것도내지 않아도되고,제대군인들 공부 조금만 배워주면 모든게 다 해결된다고, 자기네 대학에 그런 친구가 하나 있다고 하던 말도 기억이 난다.
정말로 풀뿌리도 없어 캐먹기 힘들었던 그 시절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걔 덕분이라고 지금까지도 말하곤 한다.
학급에서 제일 잘사는 걔와 제일 못사는 나, 그래서 세상은 참 공평하다고 했나 보다,
하나님은 못사는 저에게 좋은 머리를 주시고, 공부 못하는 걔에게는 잘난 부모를 주셨다.
그러나 마음씨 고운 *옥아 내가 너를 어찌 잊겠느냐, 너는 나의 생명의 은인이거늘, 나에게 참 인간의 됨됨이를 알게 해준 친구 *옥아, 미치도록 그립구나!
친구들
우리 학급에는 지금도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리더십의 왕 김*예가 있었다.
학급반장으로서 애들을 참으로 잘 다뤘다. 공부도 잘했고 착했으며, 노트정리 또한 깔끔했다. 우리반 친구들은 걔 말 한마디면 무조건 예쓰다.
한번은 걔네 집에 특간호(북한에서는 중요 국가 명절때마다 학급마다 한 개씩 이불장 하나 크기 면적의 그림과 글을 내다 붙이고 전시하고 등수를 정한다.)를 그리려고 갔다가 (나는 그림을 그리고 걔는 붓글을 쓰곤 했었다, 어떤 때는 특간호를 그리다가 너무 늦으면 걔네 집에서 잠을 자기도 하였다) 한참 열중해서 특간호를 그리고 있는데 영*이라는 친구가 놀러왔다. “*예야 놀자“ 그러나 우린 놀 시간이 없었다, 내일이면 당장 2월 16일(김정일 탄생일)인데 오늘까지 다 못 그리면 큰일 난다. 그래서 걔가 ”오늘은 안될것 같애“ 라고 했는데 영*이라는 친구가 문밖에서 엉엉 우는것이였다.
우리 둘은 급히 나가서 왜 우냐고 달랬다. 그러자 걔는 그냥 집으로 쌩 하니 가버렸다. 후에 안 일이지만 내가 왔기 때문에 걔가 자기하고 안 놀고 나하고만 놀려고 한다고 오해를 한 것이였다. 그 정도로 김*예는 학급에서 인기가 짱이였다.
걔네 할머니도 걔네 오빠도 부모님들도 나를 참 잘 대해 주셨다. 또 한번 특간호를 그리려고 걔네 집에 갔는데 그날도 너무 늦게 끝나는 바람에 걔네 집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걔네 할머니가 나를 주겠다고 늦은 저녁 장마당에 가셔서 두부를 사오셔서 끓였으니 저녁을 먹고 자고 가라는 것이였다. 오래간만에 걔 할머니가 끓여주시는 두부를 어찌나 성급하게 먹어 댔던지 그날 나는 체끼를 만났다, 배가 이상해서 한참 낑낑 대고 있는데 걔네 오빠가 잔등 중심의 척추를 엄지 손가락으로 꾹 꾹 눌러 주셔가지고 말끔히 나았다. 걔네 집 식구들은 모두 하나와 같이 좋은 분들이였다.
지금은 시집을 가서 애 하나를 낳고 그럭저럭 장마당에서 공업품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 한댄다.
항상 긍정적인 모습으로, 밝은 모습으로 학급애들을 잘 이끌어 갔던 김*예, 후에는 제가 학교사업을 다 내려놓고 소년회관으로 가게 되면서 걔를 학교 사로청부위원장으로 추천을 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가, 엄마랑 동생들이 한국에 와서 하는 말이 장마당에만 가면 “너 언니 너무 아까운데” 하면서 나를 계속 외우더란다. *예야 너무 보고싶구나 친구야,
*순 이 친구는 정말 너무 아까울 정도로 똑똑하고 공부를 잘했던 친구다. 이 친구의 아빠 엄마는 전쟁 고아다.
집에 딸 둘 아들 하나 가 있었는데 맏언니 하나 있고 밑에 남동생이 하나 있고 이 친구는 둘째딸 이였다,
얘네 아빠 엄마는 전쟁때 충격이 커서 였는지 모두 정신지체 장애인들이다.
언니와 동생은 엄마 아빠 닮아서인지 정상은 아니였지만 다행이도 둘째 딸 하나만은 정말로 똑똑하게 낳았다,
모를 문제가 있으면 밤중이라도 선생님 집을 찾아가 해결하고야 마는 정열에 불타는 애였다.
그래서 거의 반의 1등은 얘가 차지 했었다. 우리 반 담임선생님께서는 늘 이 친구한테 '너는 학교 졸업하면 꼭 사범대 가서 고등학교 교원이 되거라' 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러던 그는 집안 사정때문에 대학에는 꿈도 못 꿨고 온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식량 전선길에 올라야 했으며 내가 북한땅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던 해, 역전에서 엄마랑 나란히 서서 사탕을 팔고 있었다.
나도 물론 처지가 가궁했지만 걔를 보니 더욱 안타까웠다. 나라의 흥망을 좌우지 할 인재가 이런 역 대합실에서 사탕 막대기나 팔고 있어야 한다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이냐!!! 정말로 너무 속상했다.
대합실 문어구에서 엄마랑 같이 나란히 사탕막대기를 들고 서서 사람들에게 “사탕 사시오” 하고 애걸하는 모습,,, 지금 생각해봐도 기가 막히는 비극적인 장면이다.
나는 누구를 원망할 맘도 없다, 그냥 추억을, 나의 소중한 추억을 글에 담았을 뿐이다.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또 잊을 수가 없는 추억, 오늘날 나를 있게 해준 고마운 원동력, 누가 말했던가 추억은 아름다운거라고... 고향이여! 벗들이여! 사랑이여! 추억이여! 영원하라!
2012년 어느날
댓글목록19
*소백산님의 댓글
읽는내내 글쓴분이 독서를 많이 한 분이구나
똑똑한 사람이구나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구나
개그감성은 조금 부족하구나 하는걸 느꼇습니다.
글속의 생활 에피소드에 대한 재미(?)는 조금 덜하였습니다.ㅎ
짧은 단편같기도 한 소소한 수필(?) 잘 읽고 갑니다.
고향은북쪽님의 댓글의 댓글
감사합니다.
백마탄환자님의 댓글
고향은북쪽님의 댓글의 댓글
백마탄환자님 긴 글 마지막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fss님의 댓글
언젠가 그리웠던 친구들 웃으며 안아줄수 있는 날을 기다려봐요
고향은북쪽님의 댓글의 댓글
그리웠던 친구들 꼭 그날까지 살아있어주면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이제는 다른 것에 대한 감사도 중요하지만 살아 남아주는것에 대한 감사가 가장 큰 감사함임을 절감하고 있답니다.
우리 함께 그날 까지 억세게 살아남아요. 화이팅!
가고싶어라님의 댓글
철산군님의 댓글
고향나루님의 댓글
학생이 공부를 잘하면 모범학생이지 .
로어 시험 1등은 아무나 하는것이 아니고 1등의 자리는 혼자차지하는자리이니 얼마나 잘했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교원이야 공부잘하는 학생이 제일 이쁜거지요
그렇게 1등한 로어 썩이지 말고 로어로 성공하세요
참말로 로어잘하니 러시아에서 온 편지 번역 부탁하고 싶네요
메일로 오면 번역기에서 보겠는데 팔순이 넘은 고모가 쓴 편지여서 번역도 못하고 있어서 조심스레 물어봅니다 .
고향은북쪽님의 댓글의 댓글
노어 이제는 안 한지도 20년이 흘쩍 넘었죠.
그때 암기했던것들 이미 머리속에서 이사간지 꽤 되었죠. ㅎㅎ
고향가자님의 댓글
그래도 본문 작성자님은 성공하셨네요. 한국에 오셨으니요 ㅎㅎ
안오셨음 친구분처럼 역전에서 막대사탕을 파셔야 되실지도 ㅎ
님글을 읽으면서 한국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지 다시한번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행복하세요^^
고향은북쪽님의 댓글의 댓글
너무 고지식해가지고 할 줄 아는게 소금배낭메고 농촌 문 두드리는 것 밖에 없었답니다. ㅎㅎ
황금가면님의 댓글
고향은북쪽님의 댓글의 댓글
저도 글을 쓰는 내내 너무 행복했습니다.^^
황금가면님의 댓글의 댓글
뒹구는돌님의 댓글
공부를 잘하고 똑똑하여도 주어진 환경 탓에 좌절하는 경우는 이곳에서도 종 종 있었던 일입니다.
지금은 정말 많이 좋아진거죠.
언제 이곳에 오신지는 잘 모르겠지만 잘 정착하셔서 꿈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시길 기원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향은북쪽님의 댓글의 댓글
행복했던 추억과 가슴아팠던 추억 모두가 삶의 원동력임을 깨달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본나빠님의 댓글
좋은추억 떠올리게 해서 고마워요
ibc라이언님의 댓글
그 친구들도 님을 그리워 할거예요.
저두 친구들이 그립네용~~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