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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있은일

누가날 독한인간으로 만들었는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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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내나이 17살,고등학교졸업이다,학교시절생각하면 정말 아쉽다.4학년까지만해도 공부잘햇는데.......특별히 수학공부잘했다.

전반에서 1등 2등자리를차지했고 반을대표해서 경기에도참가했고 학교를대표해 군적인 경기에도 몇번 참가했었다

학기시험이 잇을때에는 친구들을 몇몇책임지도 배워주기도 햇고 동네 남친구들도 나의 수학책을 자주 빌려가군햇었다

4학년들어서면서 아에 학교에 못간것이다.살려면 시간이 생명인데 어디 학교나갈새가 있으랴...

돈 50원땜에 졸업식에도 못 참가했고 졸업해서산업관리사무소라는곳에 배치받았다

이때 통보하는데 자원적으로 6개월동안 깊은 원수림에 들어가 땅을 만드는지원운동을 한다는것이다

강요로가는거 아니구 자원해서 간다는것이다.이말을 듣고 난 오래생각했다..

왠지 난 이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엇다.집이라는곳을 떠나고싶엇다.죽이되든 밥이되든 다 알아서 살아라하는 맘으로 멀리 멀리 누구도 안보이는곳에 가서 힘들고 지친마음을 쉬게하고싶엇다

집이란 가족의정이 있는것인데 난 집이라면 끔찍했다

날씨도 따뜻하고 동생도 컷고 어머니도 움직이는데 설마 굷어죽으랴하고 생각하며 그 자원땅개발에

참여했다.(쉼터 탈북수기에서 <내가본 정치범수용소>가 제가  지낸 6달생활입니다)

고생이라는 팔자는 어디가도 날 따라다녔고 어깨짐을 내려볼려고 집을 도망쳐 그시간을 보냈지만 맘

한구속으로는 집이 걱정되였다..그 6개월끝나서 돌아왔다

속으로는 식구들 어찌사는지 근심이드는 맘으로 집으로 향하였다

집에 들어서니 어머니 방구석에 누워있고 옆에 동생들 어디서 뜯어왔는지 나물을 가리고 잇었다

근데 매일 집에서만 있던 후아버지가 안 보이는것이다.다리를 못쓰니 아무데도 안가고 집에만 있던사

람이 안보여 속으로 이상하다했지만 난 묻지 않았다.이상하게도 동생도 아무말 없었다..

어머니도 후아버지 어디 갔는지 말 안했다..난 역시 묻지도 않았다.
저녁을 나물로 먹고 밖에나와 않아있는데 동네 아주머니가 <너 아버지 사망했는데 왜 안왔댔어? 그래
도아버지인데 제사에는 와야지>하고 말했다..난 속으로 지금 뭔소리하는가 하고 어리둥절해서 아무
말 안하고 집에들어가서 동생한테 물어봣더니 ..............
후아버지 영양실조로 죽었다는것이다.........
내가 집을 떠날때 까지는 영양생태 안좋기는하였으나 생명이 다 갈정도는 아닌것 같앗는데 집을 떠난
6개월사이에 집에 사람이 죽은것이다.
이말을 듣는순간 난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저 동네 누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것처럼 슬프다는 맘이 하나도 없었다
사망한지 며칠이 되냐고 물엇더니 이미 2달이 된다는것이다.동생이 말하기를 어머니가 나한테 알리지 말라고 했다는것이다
어머니 아마 평소에 나와후아버지사이가 안좋아서 알리지말라고 했을까?
하여튼 사람이죽었는데 난 왜 피도 없는사람처럼 슬퍼할줄 몰랏을까?내가 정말 못 되먹엇는가?
그리고 집을 보니 정말 억망이였다.식량이라는건 한알도 없고 정말 초상난집그대로 컴컴한집 둘러볼힘도 없었다
난 앉아서 생각하기를 <그래 이것이바로 팔자라는것이야,도망쳐도 안되고 떠나도 안되고 외면해도 안되는것이 나의팔자구나>하며 긴한숨을 쉬였다.
난  훔치고 빌고 생각만해도 지긋지긋하는 일들 꿈찍했다..관리소구 나발이구 살아야겟는데 가지도 않았다
집을 둘러보니 팔수잇는것은 물독밖에 없었다..난 어머니한테 묻지도 않고 이 물독을 80원에 팔앗다.
이 80원을 가지고 되던 안되던 장사하려고 햇다..야채장사라도 하고싶었다..정말 우끼는나였다.80원가지고 야채장사시작하였다..
돈이 적다보니 야채들 조금씩 팔고 첫날에 아마 20원 정도 벌었다..80원을 믿돈으로 20원 번 나는 뭐든지 시장에 들고가면 팔게되고 돈을 벌수잇다는 생각을 햇다...며칠을 받고 팔고 하니 80원돈이 200원으로 늘어났고 돈을 모으기 전에는 집식구들하루에 강냉이가루한끼식 먹도록했다
난 장사를 남들과 다르게했다.17살인난 다른사람들 싸게는 팔수없다고 야단들이지만 저녁5시부터는 본전으로도 난 팔았다.
왜냐하면 야채는 하루를 묵이면 싱싱하지 않아서 다음날 사는사람이 없게되기 때문에 당날에 무조건 다 팔았다
집에 돌아와 얼마안되 추석날이 왔다..그래도 장녀로써 첫제사날은 도리로 가야되여 산소에 갔다
묘에 절을하는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해오는것이다..
아무리 미워도 아무리 상처준사람이라도 이젠 차가운 땅속에 묻힌사람이 됐구나..그래도 어머니와9년을 살앗는데 아버지란말 한마디 못듣고 결국은죽은사람이 됐구나,그것도 못먹어서 큰병도아닌영양실조로 죽었다하는생각에 처움으로 미안햇다.
산소앞에서 머리속에 지나간 9년이란세월 영화장면처럼 떠올랐다.맘속으로 <미안해요 아버지란말 한마디 못해주고 돌아가신소식도 남들한테서 들어야만한 모든거 미안해요.살아있을때 잘해못준거 미안하고 늦게 철들어 지금이나마 후회하는거 미안해요>
눈물은 안나오나 맘속으로 이렇게 생각햇다.이때 어머니 나의옆구리찌루며 좀 우는척이라도하라했다
눈물이 안나오는데 어떻게 우는척하는가하는 눈으로 어머니 마주보며 왜 눈물이 안나오는지속상햇다
어머니의세번째 남편도 결국은 저세상사람으로 되엿다.어머니팔자도 기막힌팔자다,어쩜 남편이라하는사람 다 안되는지.......


......................

이제부터 나의야채장사로 시작된 장사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엿다.야채장사 4달만에 식량장사로 바꾸고 7달만에 어머니와 동생을 시장에 앉히고 난 전국을 돌며 장사하였다..

이리하여 나의나이 18살이 됐다....                          <다음편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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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9

아름마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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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여장부 입니다 오뚜기 같은 님의 인생사  정말 장합니다.
그런 불구의 의지만 가져 있다면 남한에서 성공 할것입니다.
말미에는 성공한 글들이 올려지겠지요
좋은글 잘봐습니다.

김멍구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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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네요 ............  장사의 길  암튼  품잡아서 잘보앗습니다 .............

다음편은  18살 부터시작 합까 ?  궁금

롤링스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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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합니다 진짜.. 17살 나이에 참...  저는 그 나이때 무엇을 했나 생각해보니 참 한심스럽네요..
공부도 잘하시고 장사도 잘하시고.. 참 훌륭하시네요..

매운고추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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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에 장사를....
진짜 대단하시네요.

전 그 나이에 부모님 해주시는
따뜻한 밥 먹으며 반찬투정이나 했었는데..
부끄러운 생각이 드네요.

참 강하고 대단한 분이시네요.
어떤 분이신지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

왕갈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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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멋잇'는  분이시네요....힘내세요

구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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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행복할일만있으시길 바랍니다.

암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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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저도 장사를 한사람이지만 그 어린나이에 정말 대단하네요,,돈도 잘따라주고,,,,볼수록 님의 생활이 더 궁금해져요,,,,

구름기둥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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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라 불상하지만 그렇게 애들한테 말한마디 따뜻하게 해주지도 않고 되려 몸에 상처까지 내게한 훗아버지가 무슨 정이 있어 눈물이 나겟어요. 솔직한 심정 이해가요. 오히려 눈물이 펑펑쏟아졌다고 하면 가식인거지요.그리고
그렇게 운이 따라주니까 다음도 기대되요.

레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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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구멍에도 해들날이 있다는데 어쩌면 어린나이에 그리도 고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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