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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있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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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학에서 요구하는대로 점수 받고 장학금 받으면서 공부한다는 것도 어려운데 북한 대학생들은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아침 기상해서 밥 먹고 강의 받으러만 가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이다. 나는 그래서 남한의 대학 생활이 꿈만 같았다.
북한에서는 말이 대학생이지 거의 매주 1회씩 새벽 일이나 야간 일들이 제기 된다.
첫 야간일은 나에게 잊혀 지지가 않는다. 낮에 학부지시가 아닌 연대부 지시라면서 소대장이 나에게 ( 학급 초급단체 위원장은 대학위원회 지시를 받지만대학생활위원회가련대부에 있으므로 소대장이 지시를 받고 학생들은 복종하기만 하면 된다.) 오늘 밤에는 역전에 석탄 부리는 작업이 있다고 우리반은 21명 이므로 15명 이상 나가야 한다는것이다.
나는 아픈 학생들과 사정이 있는 학생들은 개별적으로 제기하라고 하고 그날 일과총화 시간에 보고 받고 그 자리에서 작업인원을 선정하여 학부 지도원 선생님에게 보고 하였다.
밤이 되어 전체 학생들이 소대별로 대열을 지어 노래를 부르면서 역전에 도착하니 긴 열차가 옆으로 비뚤어져 넘어가듯석탄을 반쯤 쏟으며 서있었다.
저쪽 구석에 삽들이 보이는데 우리반 영애가 막 달려 가서 거기에 있는 어떤분에게 머라 하더니 달려 와서 저렇게 큰 삽으로 우리가 어떻게 일하냐고 저삽을 들지도 못하겠다면서 그 아저씨에게 우리반은 음악하는 애들이라 작은 삽을 15개 부탁 했더니 따로 준다고 했다는것이다.
나는 놀랐다. (와 이친구 보통이 넘는구나?) 하면서 그때 부터 여겨보기 시작했었다.
소대장은 작업구간 받으러 가고 나는 애들을 데리고 창고에 가서앞이 둥근 작은 새 삽들과 장갑까지 덤으로 챙겨 가지고 왔다.
다른 학부 애들은 다 앞이 넉죽한 큰 삽들을 가지고 힘들게 일할 때 우리는 작은 삽을 가지고 일하는데 그때 영애가 또 기발한 착상을 했다.
학급에 유일한 남자3명은석탄 무지 위에서 경사 아래로 석탄을 밀어 내 주고남은 12명 여자들은 아래에서 밀어 내는 식으로 하자고 제기했다.
일이 시작되자 영애가 그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위에 올라가서 삽날에 불이나게 삽질하는데 와 모두 신기하게 바라봤었다.
탄광에서 자랐고 아버님이 탄광에서 잔뼈가 굵으신 분이라 석탄 일에는 완전 전문가였다.
일을 하다가 쉬는 시간이면 나는 웃기는 이야기를 하였는데 모두가 지친 기색이 역역하다.
남학생들이 많은 체육 학부나 수학물리 학부 역사 지리 학부 이런 순서로 작업이 먼저 끝나고 있었는데 마감에는 체욱학부 남학생들이 도와 주어서야 전체가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역시 나를 비롯해서 음악미술학부 특히 우리반이 남자들 자체도완전 약골이었다.
이런 야간 일 새벽일들이 자주 자주 있었고 그때마다 늘 체육학부 신세를 가장 많이 받았던것 같고 그 때마다 나는 영애 신세를 하늘만큼씩 지군하였다.
공부는 잘못하고 악기도 풀룻 외에는 잘하는 것이 별로 없는데 똑 부러지고, 일도 잘하고 사람과의 사업은 최고여서 무슨 일이든 그애 같이라면 어려운게 없었다.
나는 일 할줄을전혀 몰랐었는데 영애 덕을 많이 보게 되었고 언제부터 딱 친구가 되었다.
대학생활에서 이런험한 작업들이계속되는데 내부적으로 3대혁명 붉은기 학부 쟁취 때문에너무 너무힘들었던 기억도 있다.
농촌 지원이 제기되었을 때도 중고등학교 시절에는음악 소조이므로 빠졌던 농촌지원에 대학생이 되니 무조건 나가야 했고, 모내기, 김매기, 벼가을,강냉이 가을, 와 정말 늘 전투장이라고 써놓고 항상 경쟁하고, 그 때부터 나의 육체적 단련이 시작 되었던 것 같다.
그런속에서도 3대혁명 붉은기 쟁취를 위해서 학급 전체 과목 성적을 올려야 하고모든 생활을딱 책대로 해야 하고, 사상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전 강철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초급단체 문건 검열 또한엄청 까다롭고,정말 많은시간이 필요 하였으므로 다시 하라면 아마도 나는 못할 것이다.
인민체력 검정 통과가 안되는 몇몇 애들은 맨날 울면서 새벽 마다 뛰고 밤이면 업어가도 모르게 헛소리까지 하면서 잠자군 하였다.
100 미터 제시간에 들어 와야 하고 높이 뛰기 넓이 뛰기, 단체 800 미터 제시간에 들어 오기, 사열 행진, 농촌 지원 95% 이상 참가하기, 노동 단련에 100% 참가하기,
학습 성적 우등이상 100% 보장하기, 문답 시험 통과 하기, 문건 구비 완결하기, 좋은 일하기 대장 만들기,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학급이걸어온자료 만들기,
아 더 있었던가? 완전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줄줄 빠지군 했었는데 그렇게 시작된 2중 3대혁명 붉은기 학부를 1년을 훌쩍 넘기면서야 대학 2학년 때 겨우 받을 수 있었다.
아 이제 다시 하라면 난 못한다. 돌아보며 생각해보면 아 그 때 어떻게 했던가 싶다.
그 때나의 친구들은 아마 지금도 모를 것이다! 왜냐면,
이 땅에 와서 대학을 다니면서 평화롭게 살아 보아야북한 대학시절이지옥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
기독교 대학에서 성서학을 공부하는데 옆에 친구들 보니까 강의 시간에도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 문자 받고, 아침은 거의 강의 시간에 우유에다 빵을먹어도 된다.
계속 톡하고,강의 마치고채플만 끝나면 연애하러 제일 먼저 달려 간다. 하긴 군에 가기전이라 모두들 연애 사업이 첫째이기도 할듯하다!
암튼 북한에서 공부 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자유롭고, 과제 잘하고,시험 때만 빡세게 하면피곤하게 사람 들 볶는 일들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남한의 대학생들이 정말 행복한데 여기 친구들은 또 자기들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모른다. 암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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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5

암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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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들 보다 훨씬 훌륭하게 대학생활을 하실거예요,,,,지금의 행복을 아시니까,,,,축하드립니다

xogml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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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하지는 못해도 열심히는 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무적천풍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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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참 재미있게 잘 쓰셧네요 ..다그런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금 가진것에 감사할줄 아는 사람들이 됬으면 좋겟네요..

xogml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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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사는 것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황금가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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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씨가  작아도 다부졌군요,,,,^^  근데  말이 대학생활이지  시도때도없이  온갖 잡일을 시키면  공부는 언제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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