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하기까지
2014-12-02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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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중학교를 졸업하게 되면서 진로에 대한 생각이 많이 헷갈렸다.
목란꽃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부터 수많은 상상속에 나는 늘 조각가였는데 될수가 없었고, 장래희망을 적어 내라고 할때 나는 1, 기자 2. 화학 선생님, 3, 음악 선생님이었다.
그러는 저에게 아버님이 무조건 화학 공대에 가라고 하셨고, 어머님은 김일성종합대학 가서 기자가 되라고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구역에 김대가 딱 하나 나와서 책임비서 아들이 가게 되었고 나는 그다음인 김책 공업 대학에 가게 되었다.
시험 보러 평양에 가는 날자가 되자 어머님이 아침 일찍 찰떡을 쳐서 제일 먼저 나에게 크게 떼어 주시더니 거의 절반을 곱게 베어서 콩고물에 뭍혀 넓은 도시락에담아 주었다. 열명이 나누어 먹을 양이었다.
나는 부끄러워서 안가져 가겠다고 했는데 어머님이 가져가서 같이 시험 보는 애들하고 나누어 먹으라시며트렁크에 넣어 주셨다.
3월이라 어지간히 추운 날씨였지만 너무도 긴장 된 탓에 차안에서 공부가 전혀 되지 않았다.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버스를타고 이모님 평양호텔 바로 옆에 있는 김책공업대학이 익숙한 길이라바로 찾아 들어 갔다.
큰 청사가 8개인가 둘러 싸여 있고 뒤쪽에 기숙사도 크고 멋있게 잘 되어 있는데 정해진 호실에찾아 가서 언니들한테 어머님이 싸 주신 떡을 다 주고 말았다.
시험 보러 갔는데 호실 배치를 졸업반 언니들 2명씩 사는 방에 같이 있게 했기 때문이었다.
3대혁명소조에 나갔던 언니들이 박사 논문을 쓰느라고 호실에 왔다 갔다하면서 나 보기에는 한가한듯 보였는데 어지간히 배들이 고팠던지 언니들 몇몇을 불러대더니 순간에 없어졌다..
오늘은 그냥 대기하고 있으라고 하는데 나는 너무 심심해서 평양에 이모가 세분이라 큰이모한테 전화를 했더니 차를 가지고 데리러 왔다.
큰이모부가 외국어 대학 부학장이었었으므로 시험에 대해서 한참을 이야기 하셨고 이모가 또 하얀 찰떡을 사다가 꿀발라 주면서 먹어야 붙는단다.
작은 이모님은 외국에 나가 계셔서 평양호텔 당비서인 막내 이모한테 가서 자고 다음날 아침 대학에 갔는데 가끔 보던 외삼촌을 당비서 방에서 뵈오니 와 깜작 놀랐다.
갑자기 외삼촌이 무슨 대통령이라도 되는 것 처럼보이는 것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남자 1500 미터 여자 800 미터 달리기를 하였는데 나는 체육은 제로라 겨우 중간 쯤 에서 벌벌 기어 들어 갔다.
조금 있노라니 인물 심사를 한단다. 거의 20명 되는 고수님들이 세면으로 쭈욱 앉아 계셨는데
내 순서가 되어들어 갔더니 리승기 박사 둘째 아들이 김책공대 전자공학부 학부장이라고 기억 되는데 첫 질문을 했다.
아버님이 비행사라니까 음 두 비행기가 달리는데 뒤에 비행기가 쏜 총알의 속도는 두 비행기의 속도 보다 훨씬 느리다 그 총알이 맞힐수 있겠는가? 였다.
나는 공식을 대비하여 맞힌다고 했다. 그러자 총알의 속도가 아주 느려도 맞힐수 있는가 묻는다. 순간 당황하여 총알이 뒤에 따라 올꺼 같지는 않습니다. 그랬더니 허허허
웃으면서 그럼 얼마만한 시간이 있으면 총알이 앞으로 더 나아갈까? 그러는거다!
아! 첫번재 질문 실패
두번째 질문, 깊은 산골에서 지질 기사가 깊은 우물에 시계를 빠드렸는데 얼마나 깊은지 한참 후에야 시계가 땅에 닿는 소리를 들었다. 육감으로 XX 초 라고 느꼈다면 우물의 깊이는 얼마인가? 그런다. 나는 본래 물리 수학을 제일 어려워 했었으므로 공식을 말하고는 진짜 정답은 자신이 없었으므로 우물우물 넘어갔다.
결국 공식만 말하고 우물의 깊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세번재 질문 왜 김책 공대를 지망하게 되었는가? 였다.
나는 조각가가 되고 싶었는데 될수가 없어서 그냥 학교에서 보내 주는대로 왔습니다. 했더니 김책공대는 무엇을 연구하는 대학인가 묻는다.
그래서 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입니다. 했더니 그럼 어떤 공학에 관심 있는가 물어본다.
잠시 머라고 대답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반도체 학부에서 공부하고 싶지 않냐고 한다. 그래서 " 아버님이앞으로 시대는핵 전자 시대라고하셨습니다. 반도체는 구식이라고 했기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했더니 아, 가서 아버님 젖을 더 먹고 와야겠군 그러는거다.
아 그때 얼마나 창피 하던지, 휴유유유 아버님 젖이라니, 망신이야.
네번재 질문 앞으로 합격이 된다면 어떤 연구 쩨마를 생각해 보았는가 였다. 나는 연구 쩨마가 먼지도 잘 몰랐으므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다가 대학에서 가르쳐 주시면 그 분야에 대해서 열심히 하고 박사도 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다섯번째는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난다. 하지만 누구나 5가지를 물어 봤던 기억은 난다. 다음날 부터 시험이 시작 되었다.
매 책상에 한명씩 앉혔는데 내 뒤에 개성에서 온 남자애가 계속 " 야 청진 청진 이 자에다 답좀 써 달라" 그러는거다. 나는 못들은 척하고 그냥 쓰고 있는데 시험 감독님이 그 아이 한테 가서 자를 회수 해 가시면서 문제는 왜 잔뜩 써놨나? 그러는거다.
그렇게 6 과목이었던가? 하여튼 시험을 마치고 밖에 나와서 가방을 찾아 교과서를 보면 그리 떨어질 정도로 잘못 본것 같지는 않았다만 결과는 두고 봐야 했다.
마지막날에는 장끼 자랑을 하는데 나는 두가지 악기를 선보여서 어께가 으쓱했고 재간 있는애들이 진짜 많이 온데다가 어떤 남학생들은 진짜 넘 웃겨서 배그러쥐고 웃기도 했다.
나는 입학시험에서 합격 점수를 받기는 했는데외삼촌이 김책공대 초급당 비서라나보고 하시는 말씀" 너는 공대에서 공부할 재목이 못된다. 성적은 어애가 방귀 뀌어서 잘 볼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삼촌이 점수가 나온 담에 합격자 명단에서 네 시험지를 찾아보니 안되겠다.
물리 수학이 그렇게 낮은데 어떻게 공대에서 공부하겠냐?
김책공대는 혁명역사 국어 화학만 잘하면 되는데가 아냐, 기본이 수학 물리인데 이두 과목 성적이 제일 낮어! 수학 물리를 모르면지금 입학은 한다해도 평생 직업으로 살아가기는어려운거야
종합 점수가 아무리 높아도 수학 물리 과목을 잘하지못하면 결국 공대 연구생이 못된다.
기숙사에 있으면서 3대혁명소조 갔다 와서 박사론문 쓰는 언니들 머리 싸매고 하루종일 논문쓰는거 봤지? 김책공업대학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그냥 포기해라 그게 너를 위하는 길이다."
그러신다. 나는 완전 실망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외삼촌이 그것도 종합 점수가 높으면될건데도왜 못다니게 할까? 하고 아주 아주 서운하게 생갹했었다.
하지만 봉화 진료소 과장으로 일하는 외속모님이 너무 상냥하고 좋아서 며칠 놀다가 집으로 돌아 왔다.
이후에 물론 외삼촌이 반대하셔서 결국 나는 지방 사범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목란꽃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부터 수많은 상상속에 나는 늘 조각가였는데 될수가 없었고, 장래희망을 적어 내라고 할때 나는 1, 기자 2. 화학 선생님, 3, 음악 선생님이었다.
그러는 저에게 아버님이 무조건 화학 공대에 가라고 하셨고, 어머님은 김일성종합대학 가서 기자가 되라고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구역에 김대가 딱 하나 나와서 책임비서 아들이 가게 되었고 나는 그다음인 김책 공업 대학에 가게 되었다.
시험 보러 평양에 가는 날자가 되자 어머님이 아침 일찍 찰떡을 쳐서 제일 먼저 나에게 크게 떼어 주시더니 거의 절반을 곱게 베어서 콩고물에 뭍혀 넓은 도시락에담아 주었다. 열명이 나누어 먹을 양이었다.
나는 부끄러워서 안가져 가겠다고 했는데 어머님이 가져가서 같이 시험 보는 애들하고 나누어 먹으라시며트렁크에 넣어 주셨다.
3월이라 어지간히 추운 날씨였지만 너무도 긴장 된 탓에 차안에서 공부가 전혀 되지 않았다.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버스를타고 이모님 평양호텔 바로 옆에 있는 김책공업대학이 익숙한 길이라바로 찾아 들어 갔다.
큰 청사가 8개인가 둘러 싸여 있고 뒤쪽에 기숙사도 크고 멋있게 잘 되어 있는데 정해진 호실에찾아 가서 언니들한테 어머님이 싸 주신 떡을 다 주고 말았다.
시험 보러 갔는데 호실 배치를 졸업반 언니들 2명씩 사는 방에 같이 있게 했기 때문이었다.
3대혁명소조에 나갔던 언니들이 박사 논문을 쓰느라고 호실에 왔다 갔다하면서 나 보기에는 한가한듯 보였는데 어지간히 배들이 고팠던지 언니들 몇몇을 불러대더니 순간에 없어졌다..
오늘은 그냥 대기하고 있으라고 하는데 나는 너무 심심해서 평양에 이모가 세분이라 큰이모한테 전화를 했더니 차를 가지고 데리러 왔다.
큰이모부가 외국어 대학 부학장이었었으므로 시험에 대해서 한참을 이야기 하셨고 이모가 또 하얀 찰떡을 사다가 꿀발라 주면서 먹어야 붙는단다.
작은 이모님은 외국에 나가 계셔서 평양호텔 당비서인 막내 이모한테 가서 자고 다음날 아침 대학에 갔는데 가끔 보던 외삼촌을 당비서 방에서 뵈오니 와 깜작 놀랐다.
갑자기 외삼촌이 무슨 대통령이라도 되는 것 처럼보이는 것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남자 1500 미터 여자 800 미터 달리기를 하였는데 나는 체육은 제로라 겨우 중간 쯤 에서 벌벌 기어 들어 갔다.
조금 있노라니 인물 심사를 한단다. 거의 20명 되는 고수님들이 세면으로 쭈욱 앉아 계셨는데
내 순서가 되어들어 갔더니 리승기 박사 둘째 아들이 김책공대 전자공학부 학부장이라고 기억 되는데 첫 질문을 했다.
아버님이 비행사라니까 음 두 비행기가 달리는데 뒤에 비행기가 쏜 총알의 속도는 두 비행기의 속도 보다 훨씬 느리다 그 총알이 맞힐수 있겠는가? 였다.
나는 공식을 대비하여 맞힌다고 했다. 그러자 총알의 속도가 아주 느려도 맞힐수 있는가 묻는다. 순간 당황하여 총알이 뒤에 따라 올꺼 같지는 않습니다. 그랬더니 허허허
웃으면서 그럼 얼마만한 시간이 있으면 총알이 앞으로 더 나아갈까? 그러는거다!
아! 첫번재 질문 실패
두번째 질문, 깊은 산골에서 지질 기사가 깊은 우물에 시계를 빠드렸는데 얼마나 깊은지 한참 후에야 시계가 땅에 닿는 소리를 들었다. 육감으로 XX 초 라고 느꼈다면 우물의 깊이는 얼마인가? 그런다. 나는 본래 물리 수학을 제일 어려워 했었으므로 공식을 말하고는 진짜 정답은 자신이 없었으므로 우물우물 넘어갔다.
결국 공식만 말하고 우물의 깊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세번재 질문 왜 김책 공대를 지망하게 되었는가? 였다.
나는 조각가가 되고 싶었는데 될수가 없어서 그냥 학교에서 보내 주는대로 왔습니다. 했더니 김책공대는 무엇을 연구하는 대학인가 묻는다.
그래서 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입니다. 했더니 그럼 어떤 공학에 관심 있는가 물어본다.
잠시 머라고 대답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반도체 학부에서 공부하고 싶지 않냐고 한다. 그래서 " 아버님이앞으로 시대는핵 전자 시대라고하셨습니다. 반도체는 구식이라고 했기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했더니 아, 가서 아버님 젖을 더 먹고 와야겠군 그러는거다.
아 그때 얼마나 창피 하던지, 휴유유유 아버님 젖이라니, 망신이야.
네번재 질문 앞으로 합격이 된다면 어떤 연구 쩨마를 생각해 보았는가 였다. 나는 연구 쩨마가 먼지도 잘 몰랐으므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다가 대학에서 가르쳐 주시면 그 분야에 대해서 열심히 하고 박사도 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다섯번째는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난다. 하지만 누구나 5가지를 물어 봤던 기억은 난다. 다음날 부터 시험이 시작 되었다.
매 책상에 한명씩 앉혔는데 내 뒤에 개성에서 온 남자애가 계속 " 야 청진 청진 이 자에다 답좀 써 달라" 그러는거다. 나는 못들은 척하고 그냥 쓰고 있는데 시험 감독님이 그 아이 한테 가서 자를 회수 해 가시면서 문제는 왜 잔뜩 써놨나? 그러는거다.
그렇게 6 과목이었던가? 하여튼 시험을 마치고 밖에 나와서 가방을 찾아 교과서를 보면 그리 떨어질 정도로 잘못 본것 같지는 않았다만 결과는 두고 봐야 했다.
마지막날에는 장끼 자랑을 하는데 나는 두가지 악기를 선보여서 어께가 으쓱했고 재간 있는애들이 진짜 많이 온데다가 어떤 남학생들은 진짜 넘 웃겨서 배그러쥐고 웃기도 했다.
나는 입학시험에서 합격 점수를 받기는 했는데외삼촌이 김책공대 초급당 비서라나보고 하시는 말씀" 너는 공대에서 공부할 재목이 못된다. 성적은 어애가 방귀 뀌어서 잘 볼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삼촌이 점수가 나온 담에 합격자 명단에서 네 시험지를 찾아보니 안되겠다.
물리 수학이 그렇게 낮은데 어떻게 공대에서 공부하겠냐?
김책공대는 혁명역사 국어 화학만 잘하면 되는데가 아냐, 기본이 수학 물리인데 이두 과목 성적이 제일 낮어! 수학 물리를 모르면지금 입학은 한다해도 평생 직업으로 살아가기는어려운거야
종합 점수가 아무리 높아도 수학 물리 과목을 잘하지못하면 결국 공대 연구생이 못된다.
기숙사에 있으면서 3대혁명소조 갔다 와서 박사론문 쓰는 언니들 머리 싸매고 하루종일 논문쓰는거 봤지? 김책공업대학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그냥 포기해라 그게 너를 위하는 길이다."
그러신다. 나는 완전 실망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외삼촌이 그것도 종합 점수가 높으면될건데도왜 못다니게 할까? 하고 아주 아주 서운하게 생갹했었다.
하지만 봉화 진료소 과장으로 일하는 외속모님이 너무 상냥하고 좋아서 며칠 놀다가 집으로 돌아 왔다.
이후에 물론 외삼촌이 반대하셔서 결국 나는 지방 사범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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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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