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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있은일

음악 소조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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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에 담임선생님이 음악조에 들어 가는게 어떻겠냐고 부모님께 허락 받아 오라고 하셨다. 어머님은 승인을 하시고 아버님이 반대를 하셨는데 그날 밤에 반대 하시는 이유를 어머님이 저에게 말씀해 주셨다.
어버님은 18살에 어머님은 17살에 락동강까지 나오셨던 분들이신데 그때 어버님이 다리에 부상을 입은채 적후 연대에 속하여 후퇴 하던중 미군의 인천 상륙으로 인하여 부대가 거의 전멸되다 싶이하여 평양까지 겨우살아 들어 갈 수 있었단다.
그 때 간호원이 자기의 피를 수차례 수혈 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후에 그 간호원이 간호장이 되어 아버님 부대에 오게 되어 다시 만나 생명의 은인으로 서로진심으로 사랑을 하게 되었단다.
그 후 1년 후면 제대하고 결혼을 하려고 간호장 부모님이 면회 왔을 때우리 아버님은 고아였으므로 사단장님이 나서서 부대에서 크게 결혼식을 차려 준다고 약속 했었단다.
어느날 신입 비행사의 착륙 사고로 야간 훈련 보장을 위해 대기중인 간호장이 그만 잘못 되었다.
그 때 부터 아버님이 절대 장가를 안간다고 수년 세월을 홀로 보내고 있었는데 어머님이 모스크바종합 대학 공부도 하고, 제5차 와르샤와 세계 청년학생 축전을 마치고 농촌 문맹 퇴치 방참을 받고 황주 군당 교육부(시학) 장학사로 배치 되어 오자 사단장님이 군당 책입비서와 짜고 두분을 맺어 주셨다고 한다.
문제는 희한하게도 그 간호장이 부자집에서 자라면서 피아노도 아코디언도 잘했으므로 아버님에게 아코디언을 가르쳐 주셨다고 한다.
아버님은 공군절 때마다 공군 사령부에서 유일하게 아코디언을 하셨었는데 그 간호사를 잃은 후 부터 한번도 아코디언을 안하셨었단다.
그리고 배우자를 절대 음악 하는 여자는 안 얻는다고 하여 결국 우리 어머님을 만났었는데어쩌다가 음악을 너무 좋아 하는 제가 태어났습니다.
제가 자라면서 노래도 하고 공연할 때 별로 기뻐 하시지 않으시면서항상 저에게 조선의 큐리가 되는게 아버님의 꿈이라고 하시더니 음악조에 들어 간다고 하니까 그렇게 반대를 하셨다는 것이다.
그 시기에 화학원소기호 책부터 시작하여 화학의 비밀, 재미있는 화학의 세계 등 참 많은 책들을 사다 벽에 있는 큰 책장을 가득 채워 주셨었다. 몰론 나도 화학 과목을 좋아는 했지만,
그 때 당시는 화학 보다 첼로가 너무 하고 싶어서 매일 밥도 안먹고 첼로만 할꺼라고 하니까 어머님이 아버님께는 차차 기회를 봐서 말씀 드리기로 하고 먼저 음악소조 생활을 시작을 하였다.
북한의 공군 조종사들은 한달에 한번,딱 하루씩 집에 보내므로 아버님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한달에 한번만 집에 오시군 하셨다.
1년 후 공연을 마치고 너무 늦어서 학교에 들어 가지 않고 첼로를 메고 집에 바로 왔는데 어머나, 작전 휴일이 바뀌면서 아버님이 집에 오셨고 결국 들통났다.
얼마나 성이 났던지 아버님은 첼로를 세맨트 바닥에 던져 버려서 목이 부러져 나갔고 어머님은 밤새 고강도 풀로 땜을 때주셨다.
그때부터 어머님이 매일 아버님을 설득 하셨다.
나는 매일 울면서 밥을 굶고 다녔었는데 친정 어머님이 자주 아버님께 사정 사정 전화를 하셔서 어느 날 "그래 우리 공주한테 내가 졌다." 그러셔서 다시 음악조에 다닐 수가 있었다.
친정어머님도 간호사로 전쟁중에 낙동강까지 내려 오셨었는데 오른다리 무릎에 총탄이 스치면서 경기도 가평의 이정희 간호소대장 이모님 집에서 몇달을 치료받았었다고 한다.
서울의 부자이고 크리스챤이신 그 이모님이 전쟁 중이라 조용한 가평에 잠시 계셨었는데 저의 어머님의 은인이셔서 자신의 딸내미 옷을 입혀 주시고 서울 세브란스 병원 의사분을 모셔다가 큰 수술을 해 주셨다고 한다.
떠날 때에는부리는 일군을 시켜 말까지태워 북에 들어 가는 인편을 만들어주셨다고 죽기전에 꼭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시군 하셨다.
전쟁 중이라 해도 때 늦은 후퇴를 하느라 고생 많이 하셨고그 때 다친다리가 60세가 넘으면서 부터는 아주 크게 절어서 일찍 지팡이를 짚으셨었다.
(제가 한국에 온 첫해에 일하던 태진 회사에서 가평에 놀러 간적이 있었는데 어머님 생각이 나, 그 곳에 사시는분에게 물어 보니 그때 사람들이 다 돌아 가시고 안계신다고 하니 이정희 간호소대장네 이모님에 대하여알 수가 없었다.)
저는 중학 시절에 음악조에서 재능을 키웠으므로 전국학생축전에도 참가했고, 대학 시절에도 전국 문학의 밤 모임과 대학생 전국 축전에도 참가하면서좋은 추억들도남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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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4

지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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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저도 학창시절 음악소조에서 첼로를 배웠어요  내 의지가 아니고 제 언니가 악기하나 배워드면 좋타고  음악선생님에게 부탁 해서 소조에 넣었답니다  수업 끝나면 그대로 음악부로 향해야 했고 일체 사회활동도 안하고 늘 음악반에 가서 활굿기 연습을 했어요  잘 못한다고 선배 언니한테 짝짝 맞아대면서 참 ...

xogml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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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군요? 참 그 시절이 꿈 같습니다. 참 열정이 먼가를 처음 안 시절이었으니까요?

지희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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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학교때 첼로를 배웠습니다.이젠 학교졸업한지 20년이지났지만 음악부(소조)시절이 너무 그립네요.동창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참고로 오후에하는 농촌지원활동에도 빠졌지요.지금도 가끔 첼로를 다시 제대로배우고싶은 생각이듭니다.

유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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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글인데 지금에야 읽었습니다. 글씨도 잘 쓰시고 문장도 조리있게 잘 만드시네요.
모두 모두가 소중한 추억을 가지신 소중한 분들이란것을 더욱 새삼스레 느끼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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