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때 도시락 > 북한에서 있은일

본문 바로가기

북한에서 있은일

초딩 때 도시락

본문

초등학교 시절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1년동안 학교에 다녔었다.  
우리 학교 뒤에는  길다란 별채가 있었는데 거기에 교원 양성소가 있었고 어머님이 양성소 소장이셨으므로 나는 점심 시간이면 어머님한테 가서 점심을 먹군 하였다. 
늘 엄하신 어머님이라  나는 학급 애들과 같이 먹고 싶은 것이 늘 소망이었었는데, 어느날 어쩌다 어머님이 평양에 연수를 가셔서 학급 애들과 같이 밥을 먹게 되어 정말 좋았었다.
  아! 그런데 애들 도시락을 보는 순간 놀라기도 했지만 너무 가슴이 아팠었다. 
  처음 보는 잡곡밥에 된장을 옆에다 넣어 가지고 오는 애도 있고, 산나물이나 시퍼런 김치를 밥옆에 담아 오는 애들도 많았다.
  바로 내 앞에 아이는 호박 삶은 것을 싸왔었다. 나는 당연히 누구나 고기 졸임에 생선구이에 닭알을 매일 먹는 줄 았았었는데 아니었다. 선생님이 나를 부르더니 내 도시락을 가지고 사무실로 오라고 한다. 나는 그날 선생님하고 밥을 먹게 되었다.
  선생님은 항상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어렵기도 하고, 불편한데 나는 왜 그래야 하지? 하고 서운하기 까지 했었다. 그 원인을 커서야 알았다. 
  우리 선생님도 가난한 농민의 딸이었고 친정어머님이 제일 아끼는, 실력있는 제자였기에 나를 누구보다 사랑해 주셨고  내 도시락 때문에 다른 애들이 상처를 받을까봐 나에게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복무해야 한다고 하셨고,  또 학급 애들에게는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라는 구호대로 겁이 많은 나는 어머님이나 아니면 선생님과 식사를 하도록 배려를 해 주자고 하셨었다.
  그 때 부터 나는  담임 선생님 도시락 담당이 되었었다. 물론 차를 타고 학교에 오고 차를 타고 집에 가니까 부관 아저씨 몫이기도 하였지만 어쨋거나 나는 친구들과 밥먹은 기억은 단체로 산보 갔을 때와 등산 갔을 때 뿐이었던것 같고 항상 애들과 떨어져 밥먹는 시간이 너무 싫었었다.  
  그러다가 인근 공장이 규모가 커지면서 갑자기 학생들이 늘면서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어 지게 되고 도시락 싸는 일이 없어지면서 친구들과 같이 모여 줄을 서서 학교에 가는 것도 너무 좋았고, 같이 집으로 오다가 어디서든 노는 것도 참 좋았었다 역시 친구가 제일이었다.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34 건 - 2 페이지
번호
제목
글쓴이
게시판 전체검색
상담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