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
2014-11-1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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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북한에서 내가 중학교졸업당시는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때였다
하고 싶은것이 있어도 먹고살기가 더 먼저였다
담임샘은 말로 슬슬 얼려 어린나이11살 아이를 자기 아들의 보모해라 하고 그 대가로 대학보내준다고 약속까지 해놓고 정작 졸업당시 우리집 어려움을 알고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추천서 한장 써주지 않았다
어린17살에 눈치를 보니 졸업시험점수를 학부모들이 몰래 뢰물로 모두 선생 자신이 만든 가짜 점수로 매닥질이었다. 그걸 보면서 참 우울하고 예비시험에서 16등으로 1사람차이로 떨어졌다
물론 그 선생님 덕에 공부를 잘 하게 됐지만 어린나는 그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것이다
그것은 실제 나의 점수가 아닌 선생자신이 다른 공부꼴찌들을 내 앞자리에 세워 놓았으니 등신은 시험에서 떨어졌고 대학보내준다는 얘기는 핑게에 불과하고 선생남편이 되게 뭐라고 하는듯하니 전문대 추천해준다고 술 2병 가져다 바치고 결국 기계전문대 갔다
입학시험에서 합격하고 통지받았지만 취미도 없고 여자가 기계를 배워뭘하랴 싶어 학교고 뭐고 다 걷어치우고 기능공학교에 가서 결국 사회에 나가는걸로 나스스로 결정을 내렸고 배우고 싶었던 경제전문대는 저기 가버렸다.
그래도 선생남편은 양심이 있었는가 6년간을 꼬박 자기아들 키워준 공을 내치지 못하더라는,,,
그렇게 나는 일찍이 엄마에게 내가 사랑을 받을 나이에 남의 집 아이에게 정신을 뺏겨 그후 아이들이 엄청 미워졌다 조카들도 엄청 때리고 못된짓 많이 햇죠,,후~~
그리고 그때 우리집에 있는 돈 되는 것은 다 팔아 농사지으러 10km 떨어진 농촌에서 농사짓고 살았는데 그 때 농사철에 조금씩 빠져서 직장에 못나가면 직장상사들 눈을 부라리며 잡아먹을정도로 일안나왔다고 얻어터지고 미움또한 엄청받고 그래도 그렇게 농사를 한 덕에 잡곡밥이라도 도시락 넘어가게 싸가지고 가서 먹으니 다행이었지만 직장에서 도둑질해서 사는 사람들 거의 많았다
나도 그때 도둑질을 많이 했다. 우리가 살수 있는 방법이 요령껏 도둑질을 해서라도 빼앗아서라도 그렇게 무조건 남겨져 살아있는것이 그 사회의 본능이 돼버렸다
순진하고 양심적이고 비현실적이면 아마도 남아있지를 못하였을테니까
그래도 농사일을 해서 먹고살때는 철저히 남의 것 하나 다치지 않고 오직 부모님들은 자신들것만으로 자식들을 먹여살리고 그 어떤 비양심적인적 한번도 없으셨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에 만족하고 자부심을 느끼면서 사는 보람을 느끼며 ,,,
남의 것아닌 자기가 이룬 땀과 노력으로 이뤄지는 열매를 먹는것만큼이나 보람있는 일은 없다는 것도 지금 이순간 새삼느끼게 된다.
그리고 땅은 그런 사람들에게 자기들 것을 전부 내주기도 했다
뿌린 만큼 거둔다
땀이던 노력이던 마음이던 자신의 힘이든
성실하다면 ,,,,말이지
하고 싶은것이 있어도 먹고살기가 더 먼저였다
담임샘은 말로 슬슬 얼려 어린나이11살 아이를 자기 아들의 보모해라 하고 그 대가로 대학보내준다고 약속까지 해놓고 정작 졸업당시 우리집 어려움을 알고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추천서 한장 써주지 않았다
어린17살에 눈치를 보니 졸업시험점수를 학부모들이 몰래 뢰물로 모두 선생 자신이 만든 가짜 점수로 매닥질이었다. 그걸 보면서 참 우울하고 예비시험에서 16등으로 1사람차이로 떨어졌다
물론 그 선생님 덕에 공부를 잘 하게 됐지만 어린나는 그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것이다
그것은 실제 나의 점수가 아닌 선생자신이 다른 공부꼴찌들을 내 앞자리에 세워 놓았으니 등신은 시험에서 떨어졌고 대학보내준다는 얘기는 핑게에 불과하고 선생남편이 되게 뭐라고 하는듯하니 전문대 추천해준다고 술 2병 가져다 바치고 결국 기계전문대 갔다
입학시험에서 합격하고 통지받았지만 취미도 없고 여자가 기계를 배워뭘하랴 싶어 학교고 뭐고 다 걷어치우고 기능공학교에 가서 결국 사회에 나가는걸로 나스스로 결정을 내렸고 배우고 싶었던 경제전문대는 저기 가버렸다.
그래도 선생남편은 양심이 있었는가 6년간을 꼬박 자기아들 키워준 공을 내치지 못하더라는,,,
그렇게 나는 일찍이 엄마에게 내가 사랑을 받을 나이에 남의 집 아이에게 정신을 뺏겨 그후 아이들이 엄청 미워졌다 조카들도 엄청 때리고 못된짓 많이 햇죠,,후~~
그리고 그때 우리집에 있는 돈 되는 것은 다 팔아 농사지으러 10km 떨어진 농촌에서 농사짓고 살았는데 그 때 농사철에 조금씩 빠져서 직장에 못나가면 직장상사들 눈을 부라리며 잡아먹을정도로 일안나왔다고 얻어터지고 미움또한 엄청받고 그래도 그렇게 농사를 한 덕에 잡곡밥이라도 도시락 넘어가게 싸가지고 가서 먹으니 다행이었지만 직장에서 도둑질해서 사는 사람들 거의 많았다
나도 그때 도둑질을 많이 했다. 우리가 살수 있는 방법이 요령껏 도둑질을 해서라도 빼앗아서라도 그렇게 무조건 남겨져 살아있는것이 그 사회의 본능이 돼버렸다
순진하고 양심적이고 비현실적이면 아마도 남아있지를 못하였을테니까
그래도 농사일을 해서 먹고살때는 철저히 남의 것 하나 다치지 않고 오직 부모님들은 자신들것만으로 자식들을 먹여살리고 그 어떤 비양심적인적 한번도 없으셨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에 만족하고 자부심을 느끼면서 사는 보람을 느끼며 ,,,
남의 것아닌 자기가 이룬 땀과 노력으로 이뤄지는 열매를 먹는것만큼이나 보람있는 일은 없다는 것도 지금 이순간 새삼느끼게 된다.
그리고 땅은 그런 사람들에게 자기들 것을 전부 내주기도 했다
뿌린 만큼 거둔다
땀이던 노력이던 마음이던 자신의 힘이든
성실하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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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미니다람쥐님의 댓글
어이가 없넹.그래야만 살게 되여있는 국가. 그 나라 교육자의
양심이 너무나 드헙고 한심 하네요.
농사래도 제땅이 있으면 맘껏 짓고 배불리는 아니래도 굶지는
않을수 있죠.
헌데 후엔 도둑이 창궐하면서 자그마한 뙈기밭농사도 남의 살이가
되기 십상이였죠.
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