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웠던 녀맹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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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2001년경이였다.
지겨운 여맹생활에 수난도 많았던 때 ㅎㅎㅎ
여맹 초위원장이였던 민ㅇㅇ이 하던 지껄이가 잊혀지지가 않는다.
한참 갓난쟁이 첫딸를 키우고있던 어느날 나는 아기가 열이 40도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아프기에 철도 선로 풀뽑기작업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다.
고지식해서 한번도 출첵 누락했던 역사가 없었던 나였지만 아이가 아프니
어쩔수 없이 못나갔다 내 아기가 최우선이니까,,
그런데 당시 초위원장 하던 민OO 이가 작업에 동원안됬다고 앵앵거리면서 안나왔으니
돈내라고 하였다. 쭉 지켜본 결과 다른사람들이 작업에 안나오면 짹소리도 못하드만
내가 젤 어리고 새댁이다보니 만만하게 보았덩거 같았다.
아이를 업고 병원가는사람보구 돈내라고 소리치니 아주 뚜껑이 두겹 세겹 열려버렸다.
대꾸도 안하고 가는 나를보니 초장도 열받았는지 내가 오기를 울집 대문앞에서 기다리구 있네,,
그리고는 한다는소리가 “아버지 장군님께서 오셔서 철길 풀뽑기 나오라고 했는데 반항했기 때문에 너를 정치적으로 매장 시켜버리겠어 “ 하고 지껄였다.
그래서 나는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로 겨우 인내하면서 말했다.
“ 그래 아버지 장군님께서 손녀딸이 아파죽어가는걸 내비두고 풀뽑기 나오라고 했냐 ?
아버지께서 손녀가 아프면 나보다두 더 가슴아파 하실거란 말이야 이 네편네야 “
때마침 야근하고 퇴근하던 울신랑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초장의 목덜미를 움켜쥐더니 대문밖으로 던져버렸다. 고소했음,,,,
이 사건이 터지면서 동 여맹위원장한테 불리워 갔다 숱한 여맹위원들이 모여있었다.
그래서 나는 당황하지만 당황하지 않은척하고 차근차근 얘기를 했다.
그리고 끝으로 한마디 했다 “여맹위원장님께서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세요
손녀가 아파서 죽을것 같다는데 걍 내비두고 여맹동원 나오실겁니까? “
결과 일이 아주 만족스럽게 마무리 되였다 ,, 일이 될라하니 여맹위원장이
옛날 우리 시어머니가 어디 초급당 비서할 때 부비서 하던 사람이였다.
나중에 시어머니 길에서 만났는데 며느리 보통은 아니라고 하시더란다.
그 세상에서 살아남을려면 보통가지구 되겠냐구 ,,,
종종 옛일들이 떠오를 때마다 남푠과 이야기 한다.
“여봉 대한민국에 참 잘 왔어 아부떨줄 모르는 우리는 여기가 지상락원이야 ”
그러면 우리 여봉은 늘 한다는 소리 “ 너는 자유화 바람에 금방 물젖는 스타일이니까 어디 꽃히면 무조건 내미니까 에 효효효 ”
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대한민국 만세다 !
댓글목록14
샅바꽃님의 댓글
여우비가님의 댓글의 댓글
박기자님의 댓글
고향은북쪽님의 댓글
여우비가님의 댓글의 댓글
암양님의 댓글
1679님의 댓글
르누아르님의 댓글
글 잘 보고 갑니다.
따뜻한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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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비가님의 댓글의 댓글
천사님님의 댓글
그땐 열심이 하느라 무던이도 애썼건만....고지식한 제가 어떻게 고난의행군에 살아남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생각하면 바보같다는생각이 절로...ㅎㅎㅎㅎㅎ
황금가면님의 댓글의 댓글
다운이님의 댓글
오랜만에 녀맹위원장생각이 새록새록..ㅋㅋ
여긴 참모르겠네..
황금가면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