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오나 비가 오나 항상 나의 기역을 지나가는 비참안 추억

2013-10-29 23:04
3,139
14
0
본문
저는 1993 9월 30일에 태여났습니다.
난 6살에 아버지가 동선을 짤라서 아버지 기역은 거이 업습니다.
아버진 농산물 재배공이고 어머닌 미용사임니다. 아버진 술을 좋아 하셧죠 그래서 어머닌 항상 아버지의 술갑을 값느라고 바쁘니까 날 60살이 된 할머니에게 맡겻습니다 전 그렇게 되여 할머니와 함께지내서 아버지사랑 어머니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항상 할머니 손에귀하게 자라고 있는데 어머니가 와선 날보고 (니아버지가 니 앞길을 꼭 막았으니 실력으로 그들을 이겨라 )고 항상 말햊죠 그래서 전 지금 기역이 남니다 7살에 구구표를 완벽하게 봬우고 인민학교 1학년에 꿀꿀이 수학 문제 집을 다 풀고 등등 어머니의 통제속에서 공부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나의 성적은 인민학교 3학년까지 항상 우등의 첫자리를 했습니다 국가 4.5을 맏고 나먼진 다 5점을 맞아도 다님선생은 날 최우등으로 안올려주는거죠 엄마가 자존심이 강해서 선생한테 잘 안보이니까 그렇게 제성적을 깍가서 돈을 고여라 그러면 성적을 올린다 는 식으로 항상 똑같았습니다. 전 인미학교 4학년 까지 축구 소조에 다니고 선수로 할려구 했습니다 소조 담담 서생도 제가 왼재기라서 많은 기대를 했죠 하지만 인민학교 4학년에 다님선생이 봐귀면서 전 난생처음으로 최우등 반에서 1등을 했습니다 이소식을 어머니 한테 전하니까 어머니가 마음으로 우시더라구요 이땅이 얼마나 비참한지 제앞에선 눈물을 흘리지 않고 제가 잘때 제 옆에 앉아서 저의 머리를 쓰다드므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는 저의 심정은 어떻했겟습니까 인민학교 졸엄을 앞두고 1고들중학교 갈 아이들을 선발하는데 제가 우연이 나도 시험을 보겟다고 했습니다. 그시험에서 전 전교 3등을 했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일이죠.. 어머니가 그렇게 날 독하게 항상 나에게 니가 성공할려면 남을 독사같이 딛고 올라서야한다고 말했죠 그말의 뜻을 지금에야 안 난 너무나 한심함니다. 그렇게 풍산 제1고등중학교에 들어가서 3년간 공부했죠 어머닌 제가 1학년때 중국으로 가고 난 할러니와 함께 지냈습니다 그던 3학네 할머니는 머리에 혹이 나면서 앓기 시작했죠 마을사람들은 관을짜고 죽기를 기다리고 있고 난 학교를 그만두고 할머니를 간호했습니다 고사리를캐서 팔고 약초를 팔아서 할머니 페니실린을 맡히고 또 약초캐고 하지만 제가 버는돈으론 터무니 없이 부족함니다 그래서 아버지 친척들에게 도움을 청햇지만 그들은 모른첫 했고 난 악을 물고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데 이왕 버는거 제대루 벌고 싶어가지고 아버지 처럼 동선을 짤랏습니다 어린나이지만 이젠 세상에 눈이 터가지고 921로 선 800키로 그램을 절단하여 2006년도에 동1키로 그램에 5000원식 사서 전 북한돈 400만원을 지고 할머니를 살렸습니다 정말 기적이죠 돈이면 다대고 ㅠㅠ 그 쓰레기 같은 나라를 떠서 사람답게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농촌이다 보니 다른 나라에 갈 생각은 못햊죠 그러던중 어머니가 저를 데리러 북한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어머닌 저를 5년만에 만나러 나와가지고 오던중 북한 고속도를 내면서 지형이 다 봐귀니가 길을 잘몰라서 헤매다가 잡혔습니다 전 어머니 한테 갈려구 마음을 먹었습니다 혜산에 어머니가 있다고 했지요
그래서 전 어머니한테 갈려구 차비를 했는데 할머닌 나보구 꼭 할머니 데리리 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 그말을 들은 척도 안하고 "할머니 내가 무슨 할머니를 버리게 내 다시 올게" 하고 문턱을 나섯는데 그게 마지막일 줄이야 내가 마지막인걸 알면 그때 다시 한번이라도 할머니를 더 보구 가는건데 하는 생각이 정말 가슴에 못이 박혀가지고 과거에 싸여서 눈물을 흘림니다 추석이나 할머니 생인엔 정말 힘들어요 왜 같은 어너에 같은 문화를 가지고도 서로 분렬데여 가고 싶어도 못가는 그땅에 하나님은 왜 이나라를 분열으 시켯는지 아무리 우상숭배라고 해도 "주님 이젠 할만큼했잔아요 왜그러세요 주님 항상 부모의 조언을 받을 나이에 부모와 떨러지게 만들고 부모와 혜여져 있는게 얼마나 고달픈지 주님도 아시잔아요 그러니까 이젠 할만큼 하셧잔아요 이젠 좀 저땅을 열어주세요"하고 한탄을 합니다
누구나 마음 속에 고통하나 쯤은 가지고 잊잔아요 마음에 묻지마시고 여십시오 지금 제나이 21살이지만 정말 힘듬니다 새터민 회원님들 우리 다함께 통일을 기도해요 이젠 누군가가 통일을 해지길 기다리지말고 우리가 먼저 통일을 열려고 힘을모아요 우리땅인데 우리나라인데 왜 다른 나라가 끼여드냐 우리힘으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종신 3대들으 우리가 해결해야죠 누가 해결하겟습니다 우리지금 한국에온건 그냥 운에 딸았을가요 아니면 잘하는게 있어서 왔을가요?? 아님니다 우리가 통일의 열세라고 생각함니다
지금 서울 광장에서 한국 크리 스찬들이 모여서 통일집회가 있습니다. 인터넷어 찾아보시고 한분한분 모이면 통일이 가까워 질검니다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을떼 동독 청년들이 모여서 통일 집회를 하고 기도하면서 모이다나니까 동독 전체가 다모여서 베를린 장벽을 무녀 뜨렸습니다. 우리도 모여서 기도하고 준비해서 저기 분단되여있는 콩크리트 장벽 철조망을 부셔버리고 우리의 손으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함니다 .
우리가 통일을 위해서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가가해요 고향에 두고온 자식 부모 ..... 자신을 한탄하시지마시고 좀 넓게 생각 하시길바람니다
지금 까지 저의 이야기와 생각 을 읽어 주셧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ㅇ
난 6살에 아버지가 동선을 짤라서 아버지 기역은 거이 업습니다.
아버진 농산물 재배공이고 어머닌 미용사임니다. 아버진 술을 좋아 하셧죠 그래서 어머닌 항상 아버지의 술갑을 값느라고 바쁘니까 날 60살이 된 할머니에게 맡겻습니다 전 그렇게 되여 할머니와 함께지내서 아버지사랑 어머니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항상 할머니 손에귀하게 자라고 있는데 어머니가 와선 날보고 (니아버지가 니 앞길을 꼭 막았으니 실력으로 그들을 이겨라 )고 항상 말햊죠 그래서 전 지금 기역이 남니다 7살에 구구표를 완벽하게 봬우고 인민학교 1학년에 꿀꿀이 수학 문제 집을 다 풀고 등등 어머니의 통제속에서 공부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나의 성적은 인민학교 3학년까지 항상 우등의 첫자리를 했습니다 국가 4.5을 맏고 나먼진 다 5점을 맞아도 다님선생은 날 최우등으로 안올려주는거죠 엄마가 자존심이 강해서 선생한테 잘 안보이니까 그렇게 제성적을 깍가서 돈을 고여라 그러면 성적을 올린다 는 식으로 항상 똑같았습니다. 전 인미학교 4학년 까지 축구 소조에 다니고 선수로 할려구 했습니다 소조 담담 서생도 제가 왼재기라서 많은 기대를 했죠 하지만 인민학교 4학년에 다님선생이 봐귀면서 전 난생처음으로 최우등 반에서 1등을 했습니다 이소식을 어머니 한테 전하니까 어머니가 마음으로 우시더라구요 이땅이 얼마나 비참한지 제앞에선 눈물을 흘리지 않고 제가 잘때 제 옆에 앉아서 저의 머리를 쓰다드므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는 저의 심정은 어떻했겟습니까 인민학교 졸엄을 앞두고 1고들중학교 갈 아이들을 선발하는데 제가 우연이 나도 시험을 보겟다고 했습니다. 그시험에서 전 전교 3등을 했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일이죠.. 어머니가 그렇게 날 독하게 항상 나에게 니가 성공할려면 남을 독사같이 딛고 올라서야한다고 말했죠 그말의 뜻을 지금에야 안 난 너무나 한심함니다. 그렇게 풍산 제1고등중학교에 들어가서 3년간 공부했죠 어머닌 제가 1학년때 중국으로 가고 난 할러니와 함께 지냈습니다 그던 3학네 할머니는 머리에 혹이 나면서 앓기 시작했죠 마을사람들은 관을짜고 죽기를 기다리고 있고 난 학교를 그만두고 할머니를 간호했습니다 고사리를캐서 팔고 약초를 팔아서 할머니 페니실린을 맡히고 또 약초캐고 하지만 제가 버는돈으론 터무니 없이 부족함니다 그래서 아버지 친척들에게 도움을 청햇지만 그들은 모른첫 했고 난 악을 물고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데 이왕 버는거 제대루 벌고 싶어가지고 아버지 처럼 동선을 짤랏습니다 어린나이지만 이젠 세상에 눈이 터가지고 921로 선 800키로 그램을 절단하여 2006년도에 동1키로 그램에 5000원식 사서 전 북한돈 400만원을 지고 할머니를 살렸습니다 정말 기적이죠 돈이면 다대고 ㅠㅠ 그 쓰레기 같은 나라를 떠서 사람답게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농촌이다 보니 다른 나라에 갈 생각은 못햊죠 그러던중 어머니가 저를 데리러 북한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어머닌 저를 5년만에 만나러 나와가지고 오던중 북한 고속도를 내면서 지형이 다 봐귀니가 길을 잘몰라서 헤매다가 잡혔습니다 전 어머니 한테 갈려구 마음을 먹었습니다 혜산에 어머니가 있다고 했지요
그래서 전 어머니한테 갈려구 차비를 했는데 할머닌 나보구 꼭 할머니 데리리 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 그말을 들은 척도 안하고 "할머니 내가 무슨 할머니를 버리게 내 다시 올게" 하고 문턱을 나섯는데 그게 마지막일 줄이야 내가 마지막인걸 알면 그때 다시 한번이라도 할머니를 더 보구 가는건데 하는 생각이 정말 가슴에 못이 박혀가지고 과거에 싸여서 눈물을 흘림니다 추석이나 할머니 생인엔 정말 힘들어요 왜 같은 어너에 같은 문화를 가지고도 서로 분렬데여 가고 싶어도 못가는 그땅에 하나님은 왜 이나라를 분열으 시켯는지 아무리 우상숭배라고 해도 "주님 이젠 할만큼했잔아요 왜그러세요 주님 항상 부모의 조언을 받을 나이에 부모와 떨러지게 만들고 부모와 혜여져 있는게 얼마나 고달픈지 주님도 아시잔아요 그러니까 이젠 할만큼 하셧잔아요 이젠 좀 저땅을 열어주세요"하고 한탄을 합니다
누구나 마음 속에 고통하나 쯤은 가지고 잊잔아요 마음에 묻지마시고 여십시오 지금 제나이 21살이지만 정말 힘듬니다 새터민 회원님들 우리 다함께 통일을 기도해요 이젠 누군가가 통일을 해지길 기다리지말고 우리가 먼저 통일을 열려고 힘을모아요 우리땅인데 우리나라인데 왜 다른 나라가 끼여드냐 우리힘으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종신 3대들으 우리가 해결해야죠 누가 해결하겟습니다 우리지금 한국에온건 그냥 운에 딸았을가요 아니면 잘하는게 있어서 왔을가요?? 아님니다 우리가 통일의 열세라고 생각함니다
지금 서울 광장에서 한국 크리 스찬들이 모여서 통일집회가 있습니다. 인터넷어 찾아보시고 한분한분 모이면 통일이 가까워 질검니다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을떼 동독 청년들이 모여서 통일 집회를 하고 기도하면서 모이다나니까 동독 전체가 다모여서 베를린 장벽을 무녀 뜨렸습니다. 우리도 모여서 기도하고 준비해서 저기 분단되여있는 콩크리트 장벽 철조망을 부셔버리고 우리의 손으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함니다 .
우리가 통일을 위해서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가가해요 고향에 두고온 자식 부모 ..... 자신을 한탄하시지마시고 좀 넓게 생각 하시길바람니다
지금 까지 저의 이야기와 생각 을 읽어 주셧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ㅇ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14
까만눈동자님의 댓글
통일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해서 꼭 성공하길 바랄게요~울 모두 홧팅해요^^
개미님행복님의 댓글
쵸친과바라케님의 댓글
너그러움과 더큰것을보며 마음을 열어가는걸 배우세요
지금껏 훌륭햇어요
우리은하님의 댓글
한국에서 무엇을 해도 좋은 결과가 있겠네요..
*소백산님의 댓글
정말 생각이나 마음가짐이 보통내기가 아니십니다. 감탄했어요.
똘래님의 댓글
동틀날님의 댓글
큼이님의 댓글
아브라함qw님의 댓글
님의 글을 읽으며 정수리를 때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별의 쓰라린 아픔을 견디고 이런 글을 올릴수 있는 담대함에 격려를 보냅니다.
대한민국에 잘 정착한것 같습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가고싶어라님의 댓글
아름마님의 댓글
꼭 바라는 마음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황고집님의 댓글
르누아르님의 댓글
공부를 하면 그나이에 훌륭한 사람이 될 듯 싶어요
황금가면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