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책에서 있은일 (삼형제 이야기) > 북한에서 있은일

본문 바로가기

북한에서 있은일

김책에서 있은일 (삼형제 이야기)

본문

탈북수기 사회편 쓰다가 중단후..눈팅은 하는편이였지만.글은 안쓰게 되더라고요..

어제 같은 고향인 김책 분 한테서 쪽지가 왔는데 역전동에 사셧다길래..갑자기 역전동에 살던
삼형제 이야기가 생각나 몇자 적어볼가 합니다...

아 마 그때가 1996년 5월쯤이 아니였을가. 생각합니다..(오래전일이라..년도 까진 기억이..잘...)
김책시 역전동에 살던 귀국자 집안 자식들 의 이야기 입니다

셋째가 ..강기억 ? 이였던지..... 이부분도기억이 잘안납니다..(제기억엔 그런데..)
이집은 귀국자 집안이였는데 ..그해 (아마.1996년.) 일본에서 100만엔이라는 큰돈이 왔다는
소문이 난집이였습니다...
당시 김책시 귀국자들 중에서도 100만엔을 받는 집은 흔치가 않았는데요....
(저희집도..일년에..보통 15만엔 선이였으니...)
강씨네 집안도 오랜만에 큰돈을 받은 듯 싶었습니다..

어쨌든 그때 강씨네는 아들만 3명이 있었습니다..
큰아들..강기수? 둘째..강기철? 셋째..강기억...으로 기억하는데 틀릴수도 있습니다..

셋째 아들은 평양 호위 사령부 인가 군대로 갔고 두명은 사회에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해 4월에...(아마 ...조선인민군 창건일?..4.25) 열병식을 참가하고 강기억은 고향 김책
으로 휴가로 놀러 오게 됩니다.
(당시 김정일이가 직접 사열한 열병식 이였음)
간만에 만난 형제들끼리 점심을 식당에서 개장 한그릇(당시 김책은 개고기 요리가 많았음)씩 먹고
술도 얼큰하게 취한 상태에서 시장 주변 에 있는 담배 장사군에게서 담배를 사려고 합니다.

제가 직접 목격 한건 아니였지만

.당시 모든 물건 값들은널뛰듯 하며 가격이 바뀌고..국가에서
정한 가격이 아닌 개인들이 팔기에 ..같은 담배도 어떤 장사군은 비싸고 어떤 장사군은 조금 싸고...
그랬습니다...

.
술도 한잔 했고...셋째 강기억인...호랑이 가죽? 이라불리는 군복까지입은 상태에서 ?
( 호위사령부 군복은 조금 더멋있음)
장사군 아저씨 와 담배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하며 시비를 겁니다...
장사군은 안사겠으면 말라고...
.. 북한 군인들은 사회인들을 마구 대하는 그런 버릇이 있었는데...
강기억이도..아마...휴가차 고향에 왔다가...주위에 형제들도 있고
술도 마셨고 군인?이기도 했기에.?...장사군에게 손찌검을 합니다...
그때 마침 옆으로 지나가던 ...김책시 신평분주소..안전원(.주재원이라 도 했음)
(제기억으론 그의 성은 윤씨였고 그안전원을 윤 주재원 라고 불렀습니다)
윤 주재원이 그걸 목격 하고 저지 하게 됩니다..
(당시 안전원들과 군인들은 고양이와 쥐?의 관계였음)

호랑이 가죽? 을 입은 셋째 강기억인 윤주재원과 싸움을 붙게 됩니다...
옆에서 덩달아 형제들까지 합세하여 윤주재와 3:1로 붙게 됩니다..
거의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은걸로 소문은 났습니다...
처음에 합세햇던 형제 두명은...기억이가.무지하게 때리니까 말렸다고합니다..

그렇게..일방적으로 안전원을 구타 한후...주변에서 술까지 한잔 더한후..집으로 갔다고
합니다.
그날...안전원이 맞았다는 소식에...김책시 안전부에선 안전원 한명과 계호원 두명을 딸려
강기억이네 집으로 보냈던것 같습니다..(소문입니다)

그때..집에 도착한후 휴식중이던..셋째 기억이가 혼자서 ..3명을 상대로 ..쓰러뜨리곤...
다시 집에서 잠을 잤다고 합니다..

그날 밤...김책시 안전부에선 ..계호원 한개 소대가 출동 하여..결국 삼형제가 모두 체포 되게
됩니다..

그렇게 잡힌후 며칠만엔 ..김책시에선 그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평양 호위 사령부 소속인 강기억인...한개 소대의 계호원들과 .또 싸움을 붙었는데...
펄펄 날라다니며 계호원들을 때려 눕혔다고 합니다..
쪽수에 밀려 나중엔 체포 됐지만...암튼.....와전된 소문인진 몰라도.홍길동 같았다는등......
어쨋든 그랬습니다..

작은? 김책시내에선 그소문이 파다 하게 퍼졌고...그래도 100만엔 이 있는 집안이고 .
. 셋째 강기억인 군인인데다 호위사령 부 소속에 김정일 이가 직접 참관한 열병식
까지 참가했으니...어찌어찌. 무사할수도 있다는 소문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4개월정도 지나서 김책시 길거리엔 ..벽보 ?들이 나붙습니다..
(전봇대나...아빠트 벽면에...찌라시 형태로. .광고를 낸..방 .)

어느날 몇시에 수원...내천?..어디선가에서 총살형이 있다는 것이였습니다..
설마 설마 했지만..결국...강기억이는 총살형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공개처형을 구경하러 갔습니다..

당시 어떻게 된건지..총살형이 있을적엔...주변엔 사람들이 무지하게 몰려있었습니다.
(어떤 호기심이였을까요...나또한 그때 어떤 심리로 갔던지 기억이 안납니다)

처형장엔 말뚝이 있었고..삼형제가 모두의 앞에서 공개 재판을 받았습니다..

사형장....공터엔..길게 붙여 세운 책상들에 한 열명 쯤? 돼보이는 자들이 앉아 있었는데..
....
도재판소..누구...도검찰소...누구...중앙검찰소..누구..중앙 재판소..누구...중앙..변호사..누구
등등....이런 고위급의 법 집행인들이 였습니다..

마이크로 연결된 방송차에선? 스피커 로 그들의 범죄를 읊으며 누군가가 재판을 하였지만..
(전 그때 그내용을 한개도 기억을 못합니다)
결국 마지막에.....사형에 처한다...이말만 기억 나네요...
그리고 형제 두명은...교화 ..15년 형을 받습니다.

재판이 끝나고 기억이에게 마지막으로 할말이 없는가고 물었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는 울면서 ...마지막까지 혹시 ?하는 심정인진 몰라도 많이 반성하고 있었습니다..

그후 말뚝에 묶은후 그의 두눈과 입을 천같은걸로 가렸는데......구류장에서 이미 포기 를 했던건지
그는 모든것에 순종 했습니다...

그를 말뚝?에 묶 고...형제두명...첫째 .둘째...는...기억이가 묶인 바로 ...10미터 쯤 되는 곳에
앉혔습니다...바로 눈앞에서 셋째의 죽음을 봐야 하는것입니다..

계호원7명 정도? (내기억엔..그때가 아마 총살 집행하는 자들이 제일 많았던것 같습니다)
(북한의 총살 형은..어떤 규칙을 적용하는지 모르겠지만..범죄에 따라 3명이..3발씩 쏠때도
있고 ..5명이서...각각 5발씩 쏠때도 있습니다...)

...어떤 구호 와 함께 .....싸앗 .하는 소리와 하께...저는 두눈을 감았습니다..
(사형장에 여러번 갔지만...한번도 총맞는 순간을 못봤습니다...그순간만되면 나도모르게
눈이 감기더라고요.........ㅣ..)

총소리가 끝나고 나서야 저는 눈을 뜨며...말뚝을 보지만..이미 그의 몸은 너덜너덜 합니다
그때 21발을 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7명이서..3번씩....)

그리고 바로...형제 두명을 지프차 비슷한...러시아 군용차에 싣고 어딘가로 향했고 .강기억의
어머니는 김책시? 어벅이라는 ..시골로 추방을 가게 됩니다...


..
그리고 저는. .1997년 8월에 대흥 6교화소로 가게 되는데...
신입반장에게서 ....강기철? 과 강 기수?....두형제의 얘기를 듣습니다..

한명은 ..갱반에 배치 받았고 한명은 농장반에 배치 받았는데....97년 1월에...첫째가 죽고...
97년 7월에 전염병으로 둘째가 죽었답니다....

그렇게 삼형제는...죽었습니다..
그후 강씨들의 어머닌 ..정신병에 걸렸다던군요...
.....김책시에 그때 계셨던 분들 기억하시죠? 이사건??

무겁고도 슬픈 얘기지만..당시 북한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이기에 기억나는대로 적었습니다.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10

glad킴님의 댓글

profile_image
본래 북한에선 재일동포들 일본에서 돈 좀 많이 오면 죄아닌 죄를 씌워 정치범수용소에 보내는데, 삼형제가 안전원을 폭행했으니 시범에 걸렸겠네요. ㅜㅜ그렇게 얼마나 많은 분들이 ~~~

ㅂ2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재일동포들이 돈이 많아서 정치범 간것 보단...자본주의에서 살다가 북한으로 들어서며...일본에서 선전했던 그런 나라가 아니구나 라는걸 알고...일본만큼 생각하고..북한을 비판하며 북한에 대한 회의감을 보였던 분들이 많이 수용소로 갔습니다....북한에서 살아남은 귀국자들은 .알면서도 모른척 했던 사람들이고...저희 부모님들도...마찬가지고...아니면 정치범 갔겟죠^ 그리고 ...사람은 죄를 지으면 합당한 처벌을 받는게 마땅하지만...북한이란 나라에선 그놈의 권위주의? 때문에....결국 사람 목숨을 파리목숨보다도 못하게 여기는 나라죠.....

Fly님의 댓글

profile_image
주말도  근무중이라,, 지하철안  깨알타임에  보고있음.. 참혹하네요,,  귀국자 가족이라면 일명,  당시 북한에선 귀족이였을톈데..  머니로서도  그 사태를 메꿀수  없었을까..  인재를 잃었네요...  사형이라.. 전  늘 맨앞에서  똑똑히 봅니다,  그 이유는  죄명이  먼지 알고 싶은거였음.. 늘  인과( 원인과 결과) 에 민감하기때문.    잘  보았습니다-- ^^

ㅂ2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당시 법을 강화하기 위해...특단조취로 아마 시범껨으로 걸린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예전엔 사형을 비준하기까진 구류장에서 거의 1년씩 기다렸는데..고난의 행군시기 언제부터인가 각 도시군에서 판단해서 알아서 총살하라는 중앙당 지시가 있었다죠^^

고향나루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아이고,,,이 사건을 잘은 몰라도 비교적 잘알고 있는 여인이지요. 그집은 바로 한천내가가 흐르는 길옆 아파트인데 우리아파트 맞은켠이였는데,,,맞은켠이라고 해서 여기처럼 금방 창문건너 보이는 맞은켠은 아니고 중간에 아파트 세동이 있고 그 강씨네 아파트와 우리 아파트가 마주서있는 ㄷ자형으로 5층 아파트가늘어서 있었지요
그리고 그 총살현장에도 있었구요...
내가 이름은 모르나 내가 알고 있는건 바로 아들이 군에서 제대되어 집으로 군관과 같이 왔는데 오랜만에 온 아들과 군관을 대접하느라 밤새껏 술자리가 있었기에 강씨는 잠도 얼마 못자고 이튿날 어머니와 같이 연호에 있는 시장으로 갔다가 담배파는 노인네 한테서 담배 몇가치를 꺼내서 피워무니 노인네가 담배값을 달라고 하니 (당시 시장에는 여과담배는 한갑이 아니고 한가치에 얼마씩 팔기도 하였지요)  인민군대가 담배한대 피우는데 담배값을 달라느냐고 하면서 담배값을 안치루면서 싱갱이를 벌리고 있으니 시장안에 있던 안전원이 와서 담배값을 주라고 하니 넌또 뭐야 하면서 안전원과 싸움이 붙었지요. 당시 엄마는 아들먹일 부식물을 사느라고 돌아다니느라 보지도 못하다나니 이런일이 벌어졋고,,결국 나이많은 안전원이 훈련된 젊은 군인을 당할수가 없었지요. 결국 강씨는 온전히 자기집에서 하루밤도 못자보고 사형을 당했지요...

고향은북쪽님의 댓글

profile_image
삼형제의 비극이네요  그런데 셌째가 잘못은 했네요.
고난의 행군때 하루하루 죽지못해 살아가는 평민들을 얕보고 막대하는  일부 군인들이 있었죠 .
저희동네에 밭이 있는 집이 몇 있었는데 가을이 되면 밭주인들의 아우성 소리가 가끔 들렸죠.
오직 그 가을만  기다리며 열심히 가꾸고 밤잠도 제대로 못자고 밭에 초막을 짓고 지키다가 봉변을 당할때 참 기가 막혔지요.
다 나라를 잘 못만나 일어난 일이기도 하지만~~

황금가면님의 댓글

profile_image
담배 몇알때문에,,,일가족 몰살,,,,셋째아들의 경거망동으로,,,,ㅉㅉ

새로운삶을님의 댓글

profile_image
한때 그 소문이 너무 자자했지요 그것때문에 김책시역전 앞에 가면 무시무시한 소문이 많이 돌았어요

천사님님의 댓글

profile_image
참 ! 총살현장은 여러번 보았어도 사람목숨이 파리 인양 때려잡고 허무한  나라는 북한밖에 없는듯,,,
아마 한국갔으면 감옥에가나 벌금이나 물면 끝날일일것을 북한에서는 한개 가족을 몰살시키누만 돈은 자기네가 횡령해버리는지는 어찌 알꼬~~~~

친마니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책분들이 은근히 많으시네요...
저는 김책에서 쌍포쪽에 살았었는데....
학교땐 신평에 있는 체육구락부 다녔구요
전체 234 건 - 1 페이지
번호
제목
글쓴이
게시판 전체검색
상담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