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2015-03-2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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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저는 청진시 포항구역 락향동 00반에서 <반간첩투쟁전람관>을 좌측에 두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친구 들에게서 북한의 신랑을 소개 받았구요
그때까진 철없던 시절이라 남자는 눈에 보이는 전부만이 남자인줄 알았죠
그때 나이가 24살이였으니까 ,,,,그 신랑이라는 사람은 저를 청진 청년공원 바닷가 근처로 데리고 가서 다짐을 받아내고나서 두번채로는 저의 부모님을 찾아가 딸램이를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 부모님을 찾아가니 부모님또한 무조건 안된다고했지요
그이유는 어떻게 알겠는가? 알지도 못할뿐더러 마음이 어떻지도 모르고 행실도 모르는 너를 우리집 사위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고 했지요
또 그다음날 찾아와서 하는말이 딸램이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다고 지켜보라고 하더군요
저때문에 찬밥신세를 당하고 또 두번채로 찾아와주니 저는 미안하고 고맙기만 했었죠
저는 모든것이 못났고 부족하기만 한데 저보다 월등한 능력있고 늘씬하고 훤한 남자를 보니 마음은 이미 미모에빼았겨 있었던것 같았어요
결국 우리 부모님께 허락받고 나서 바로 시부모님께 신랑이 <아들사망>이라고 전보를 쳤더군요
급하게 올라온 시부모님께는 신랑에게 (며느리감이 마음에 들면 바로 그집에서 자고 마음에 안들면 여관가서 자겠다)고 했나봅니다
이렇게되여 우리부모님과 사둔지간에 서로 마주앉아 화기애한 이야기가 오고갔었고 했었어요
말그대로 유머스럽고 재치스럽고 예술스러운 자리였고 모두들 대학생들이라 언변이 좋았습니다
차원높은 땅의 언변들이 였죠
그것을 듣고 있노라니 저를 돌이켜보기도 하였고 주방에서 숨죽이듯 듣고만 있었습니다
결국 시부모님은 그날 저녁을 여관으로 가셨습니다
신랑의 억다짐으로 결혼까지는 하였지만 지금 저는 한국에 있고 신랑은 북한에 있습니다
사랑은 사랑이여야하며 결혼은 주산기가 아닙니다
돈이 없이 숟가락두개로 일떠선 우리부모님은 나중에 자식도 있고 그나마 그래도 괜찮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시부모님은 자식을 돈덩이로 키우다보니 뭐나 다~ 돈으로 알던것이였습니다
지어 울 신랑이 백출장사[ 차빵통 3개량으로 ]를 갔다가 10% 20% 수분 감모하면서 계산하더니 나중에 이윤을 많이 남겨 동생들 티비며 냉장고며 다~ 해주고는 시치미를 뻑 떼고 와서는 너 나한테 뭘해줬냐고,,,묻더군요
나를 만난덕분에 그런 장사를 본전하나 안들이고 다녀와 놓고는 본전은 내놓고 이윤을 챙기고 ,,,완전한 이기주의 자였던걸 늦게 알았죠
저는 장사 장자도 모르는 사람이라서 이쁘게 차려입고 회사가서 주산만 튕기다가 퇴근햇었어요
그렇게 자라온 저의집에 이기주의자 신랑이란 사람 만나서 울집이 풍지박산이되였어요 ...
결국 저는 신랑과 이혼하면서 느낀건데 절대 인물. 체격, 돈 .능력.이것때문에는 사람 만나고 싶지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 반대의 사람을 만났습니다만 ,,,
이혼하고나서도 하는말이 자기를 오토바이를 사달라는겁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결국 중국에 있을때 전화가 와서 위안으로 한차례 도움받았구요
돈에 미치고 물욕에 미치고 미치면 꼭 망하는법이랍니다
저의 사랑이라는 단여는 이용물이 되였던것 같았습니다
사랑은 평화이고 축복이며 다뜻함이 가득한 용서임을 말씁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친구 들에게서 북한의 신랑을 소개 받았구요
그때까진 철없던 시절이라 남자는 눈에 보이는 전부만이 남자인줄 알았죠
그때 나이가 24살이였으니까 ,,,,그 신랑이라는 사람은 저를 청진 청년공원 바닷가 근처로 데리고 가서 다짐을 받아내고나서 두번채로는 저의 부모님을 찾아가 딸램이를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 부모님을 찾아가니 부모님또한 무조건 안된다고했지요
그이유는 어떻게 알겠는가? 알지도 못할뿐더러 마음이 어떻지도 모르고 행실도 모르는 너를 우리집 사위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고 했지요
또 그다음날 찾아와서 하는말이 딸램이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다고 지켜보라고 하더군요
저때문에 찬밥신세를 당하고 또 두번채로 찾아와주니 저는 미안하고 고맙기만 했었죠
저는 모든것이 못났고 부족하기만 한데 저보다 월등한 능력있고 늘씬하고 훤한 남자를 보니 마음은 이미 미모에빼았겨 있었던것 같았어요
결국 우리 부모님께 허락받고 나서 바로 시부모님께 신랑이 <아들사망>이라고 전보를 쳤더군요
급하게 올라온 시부모님께는 신랑에게 (며느리감이 마음에 들면 바로 그집에서 자고 마음에 안들면 여관가서 자겠다)고 했나봅니다
이렇게되여 우리부모님과 사둔지간에 서로 마주앉아 화기애한 이야기가 오고갔었고 했었어요
말그대로 유머스럽고 재치스럽고 예술스러운 자리였고 모두들 대학생들이라 언변이 좋았습니다
차원높은 땅의 언변들이 였죠
그것을 듣고 있노라니 저를 돌이켜보기도 하였고 주방에서 숨죽이듯 듣고만 있었습니다
결국 시부모님은 그날 저녁을 여관으로 가셨습니다
신랑의 억다짐으로 결혼까지는 하였지만 지금 저는 한국에 있고 신랑은 북한에 있습니다
사랑은 사랑이여야하며 결혼은 주산기가 아닙니다
돈이 없이 숟가락두개로 일떠선 우리부모님은 나중에 자식도 있고 그나마 그래도 괜찮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시부모님은 자식을 돈덩이로 키우다보니 뭐나 다~ 돈으로 알던것이였습니다
지어 울 신랑이 백출장사[ 차빵통 3개량으로 ]를 갔다가 10% 20% 수분 감모하면서 계산하더니 나중에 이윤을 많이 남겨 동생들 티비며 냉장고며 다~ 해주고는 시치미를 뻑 떼고 와서는 너 나한테 뭘해줬냐고,,,묻더군요
나를 만난덕분에 그런 장사를 본전하나 안들이고 다녀와 놓고는 본전은 내놓고 이윤을 챙기고 ,,,완전한 이기주의 자였던걸 늦게 알았죠
저는 장사 장자도 모르는 사람이라서 이쁘게 차려입고 회사가서 주산만 튕기다가 퇴근햇었어요
그렇게 자라온 저의집에 이기주의자 신랑이란 사람 만나서 울집이 풍지박산이되였어요 ...
결국 저는 신랑과 이혼하면서 느낀건데 절대 인물. 체격, 돈 .능력.이것때문에는 사람 만나고 싶지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 반대의 사람을 만났습니다만 ,,,
이혼하고나서도 하는말이 자기를 오토바이를 사달라는겁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결국 중국에 있을때 전화가 와서 위안으로 한차례 도움받았구요
돈에 미치고 물욕에 미치고 미치면 꼭 망하는법이랍니다
저의 사랑이라는 단여는 이용물이 되였던것 같았습니다
사랑은 평화이고 축복이며 다뜻함이 가득한 용서임을 말씁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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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2
오늘도무사히님의 댓글
천사님님의 댓글의 댓글
돈이 돈을 낳고하는방법은 시집에서 주입받아서 알게되녔 였지만 물질이 돈이되고 그돈의 가치에따라 먹는생활은물론. 입는생활의 차이를 알아가게된 과정이였던것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