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두만강 8
작성자 비공개 ㆍ추천: 1  ㆍ조회: 1708
작성일 2017-07-07 (금) 20:15
달 뜬 밤의 강둑은 공동묘지처럼 기괴하게 높았다. 두만강을 따라 쌓여진 이것 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넘어가고 넘어 왔을까?조기천이 쓴 장편서사시 [백두산]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뒤에는 감옥과 죽음을 두고
앞에선 이름도 모를 위험이
고양이같이 모퉁이 지키는데
… …

북중 국경의 밤, 삶과 죽음이 부딪친다. 북방의 추위는 공기마저 칼처럼 날카롭게 벼린 듯 했다. 돌맹이도 삭힐 수 있다는 무섭고도 위험한 20대 초반의 내 콸콸 흐르는 끓은 피를 단번에 얼렸다. 냉기가 살을 비집고 뼈까지 들어온 것 같았지만 이 제방 위를 넘어서면 내 운명은 어떤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앞으로 10분 후의 내 몸이 어떤 모습일지 더 궁금했다. 어느 인민군 군인의 총칼에 등이 찢겨질지, 혹은 뾰족하고 뜨거운 총알이 머리뼈를 박살낼지, 혹은 행운이 따라서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을지 모든 가능성들이 내포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느 것도 알 수 없었다. 삶과 죽음을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불안을 증폭시켰다.

배를 납작 붙이고 기어오르고 있는데 흐르는 강물소리가 점점 사납게 들려왔다. 50미터 앞에 하얗고 넓은 두만강이 보였다. 강까지 자갈과 모래밭을 기어가야 했다. 완벽한 원에 가까운 달이 햇빛처럼 비치고 있었지만 내 눈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갈밭쪽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제방 뚝 위로 조심조심 내려갔다. 심장이 무질서하게 뛴다. 뱀처럼 긴다.

"땡그랑 땡크랑 …"

빈 통조림통이 연결된 줄에 몸이 걸렸다. 군인들이 몰래 도강하는 이들을 잡아낼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것이 내는 소리는 내 머리 속을 표백시켜 버렸다. 브로커가 낮은 휘파람 소리처럼 "뛰어!"라고 날카롭게 속삭였다. "야 거기 섯!" ㅤ깨어난 군인들이 호루라기를 불면서 쫓아왔다. 달빛 때문에 해골처럼 눈과 볼이 움푹 파인 인민군 병사의 수척한 얼굴들을 얼핏 봤다.ㅤ

머리칼이 쭈뼛 섰다. 강물에 뛰어든다. 헤엄친다. 팔다리가 맹렬하다. 잠수한다. 숨 막히다. 한 숨 마시고 싶다. 아서라, 목숨과 바꾸련? 총소리, 또 총소리. 사납다. 밤하늘이 찢어진다. 천둥 같다. 사실 그게 심장소리인지 총소리인지 분간이 안되었다.

4월의 강물들은 시원할까? 차가울까?ㅤ 더 좁혀서, 4월의 두만강은 얼마나 차가울까?ㅤ 좀 더 좁혀서, 2007년 4월의 어느 새벽 자신을 향해 발사되는 총알이 내지르는 굉음을 들으면서 그 강을 건넌다면, 그 물은 차가울까? 이세상과 저세상의 경계에서 허우적되는 작은 생물에게 그런 생각은 무감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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