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두만강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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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7-07 (금) 20:14
“우리”를 뛰어넘지 못하는 우리 인민과 이 우리를 뛰어넘지 못하는 돼지에게서 나는 어떤 유사한 모습을 봤던 걸까?

3년 전 9월 어느 날 오후 가을볕은 따사롭고 하늘은 높았다. 중국에 가축사료를 사러 갔던 아버지가 귀국하면서 사료포대 속에 남한 책 몇 권을 가져왔다. 세관을 통과할 때 세관원들은 길고 날카로운 쇠창으로 무기나 "자본주의 상품"을 가져오지 않는지 쑤셔본다. 그런데 다행히 멀쩡히 집에 돌아오신 걸 보니 적발되지 않은 모양이다. 침대에 누운 나에게 매끈하고 하얀 종이책을 슬그머니 이불 속으로 넣어주었다. 그때 아버지의 눈빛은 들키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중 한 권은 주제별로 씌어진 철학개론서였다. 3W 배터리 전등 아래에서 밤새 읽었다. 약육강식, 부익부 빈익빈, 썩고 병든 자본주의라고 조선중앙방송 메인 아나운서의 심히 동정어린 말로만 몇 마디 듣던 세계에서 온 책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북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새로운 사유들이 그 안에서 끓고 있었다. 절대적 진리를 위해 동등하게 질문하고 대답하고 토론하는 평등한 논쟁의 장이었다. 제일 내게 강한 인상을 남긴 철학자는 플라톤이었다. 그는 동굴에서 태어나 모닥불에 비친 자신들의 그림자를 실재라고 착각하는 죄수들에 대해 말했다. 그 중 한 명이 사슬에서 풀려나 동굴 속에서 벗어난다. 고통, 충격, 당황의 감정들 이후에ㅤ작열하는 태양, 푸르른 숲과 바람을 느끼게 된다.ㅤ

나는 수척하고 퀭한 모습으로 티비에 자주 비쳐지던 김정일을 동정하는 "충성스러운 인민"들이 그 죄수들 같았다. 날마다 인민들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외면하고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에서 수령복을 누린다고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점잖게 표현하는 "로동신문"이 배포되는 이 나라가 동굴 같았다.ㅤ

김일성의 타계 후 북한은 음소거된 아수라 판이었다. 눈에 띄는 몰살도 보이지 않았고, 귀를 찢는 폭탄의 파열음도 코를 찌르는 악취도 단번에 드러나지 않았다. 조금씩 사람들의 음식은 줄어들다가 쌀독에 바닥이 보였고 천천히 굶주리기 시작하다가 곧 하나 둘 씩 죽어갔다. 혹자는 고향을 떠나 타지방을 떠돌았지만 곧 저체온증을 졸림으로 착각해 한지에서 죽었고, 혹자는 소화되지 않거나 독으로 변한 것들을 먹고 배를 문지르다가 영영 잠들었다. 기아의 위협은 우리 가족도 피해가지 않고 아빠의 마른 어깨와 여린 엄마의 등을 위태롭게 흔들었다. 오늘은 뭘 먹어야 하나? 라는 걱정이 한숨만큼이나 깊게 스며들었고 끼니가 그 시대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ㅤ

나는 이 "동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책은 연가시처럼 내 머리 속에 박혀서 새로운 세계에로 가도록 유도한 셈이다. 수령과 더불어 하나의 우리 "운명공동체"라는 이 전체주의 시스템에서 나는 자유민주주의로 떠나기로 결심했다.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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