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식 사랑이라면 떠오르는 것

북한식 사랑이라면 떠오르는 것

댓글 : 22 조회 : 3340 추천 : 2 비추천 : 0

학교때 복도에서 이성을 만나면 부끄러워 얼굴을 못들고 학급에서 누가누구에게 고백했대 하면 온 학급이 술렁거리고 좋아했던일. 학급누군가 남성에게 고백받는거 보려고  남의집울타리 뒤에 숨어서 숨죽이고 엿듣던 일.  난생처음 멋진오빠 자전거 뒤에 탔는데  부끄러워 허리를 잡아야 할지 안장을 잡아야할지 어쩔바를 모르던 일. 그시절의 우리의사랑은  단순했고 소박했어요. 여러분들의 사랑은 어떠셨을가 궁금하네요 ㅋㅋ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21-07-29 07:35:2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에 달린 코멘트 22
무산읍6 2021.07.27 17:50  
사진 여러장 올라가네요.
유미정가 2021.07.27 18:10  
네 3장까지는  가능하네요
엄마꽃 2021.07.27 18:52  
고향이모든것은 아름답습니다
유미정가 2021.07.27 20:44  
찌질이도 못살던 그곳이 그리운건 무엇때문일가요. 그렇게 가난에 찌들린 삶이였지만 너무나 사무치는 고향입니다......
광새이 2022.11.24 19:54  
고단한 삶의 발자취가 진하게  배어있어서가 아닐까요?
쏭간지 2021.07.27 22:25  
헤헤 사랑고백으로  강내밥까마치를 받았슴다 것도 부대 변소간 뒤에서 ㅠㅠㅠ 내아는 언니는 공장변소간 뒤에서 노란 배를 받았다는데  어휴 자존심상해ㅋㅋㅋㅋㅋ단순소박하다못해 지내 가난했...
유미정가 2021.07.27 23:08  
ㅋㅋㅋㅋㅋ욱겨죽겠네. 아이구 한참 웃었네요!  그러고보면 제가 다니던 학교 공동변소 뒤에서 몰래 연애하는 애들이 많았던같아요
엄마꽃 2021.07.28 06:56  
고향이 그리움과 추억이묻어나는 사진 그리고 글 처음으로 감칠맛나는 우리의 대화공간인같네요 쉼터전체가  고향을향해 달리는 우리사람들 모습과 이뿐글이 많았음좋겠어요
유미정가 2021.07.28 09:26  
감사해요. 저도 여기서만은 우리 탈북민들이 숨을 쉴수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한국인이나 조선족분들은 우리 맘속에 그 절절한 그리움과 허전함을 다는 이해 못해요. 그 아비규환같은 굶주림과 사상강요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과 무슨얘기를 나눌수 있겠나요
엄마꽃 2021.07.28 09:46  
정답  맞습니다
산새 2021.08.30 19:37  
윗쪽 사진 두개는 평양 만수대극장 앞 정원 같으네요. 저쪽 뒤에 제 1 백화점이 보이고요.
유미정가 2021.09.03 22:14  
산새님은 평양에서 사셨나보네요.  평양은 거의 변한거 없고. 사람들만 변했어요 ㅋ
산새 2021.09.08 14:08  
네 평양에서 나서 자랐습니다.  제가 사진찍고 현상하는 취미가 있어서  만수대 동상 앞, 여기 만수대극장 앞, 모란봉 청년야외극장, 그리고 대동강 유보도의 여기 저기에서 친구들 약혼사진, 결혼 사진 많이 촬영했었습니다. 
네~중구역은 거의 변하지 않았는데 창전거리 ( 동평양에서 옥류교 건너 와서 있는 거리) 에 현대식 건물들을 지었더군요.
김일성 광장에서 하는 각종 퍼래이드 (parade) 좋은 배경을 생각한것 같아요.
유미정가 2021.09.08 21:30  
전 19살에 첨 평양 가봤는데 참 충격이였어요. 2000년도쯤 보통강. 락랑구역에 사는 일반시민 들은 참 어렵게 살더군요. 딸러마트에 갔는데 참 그 업신여기는 그눈빛 말투 잊을수 없어요 ㅋ
산새 2021.09.20 20:38  
그러셨군요... 제 생각엔 달러마트에 가셨던 곳이 평양시 보통강구역 락원동 아닌가 싶습니다. 거기에 오래전부터 오화상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락원동에 사는 사람들 다 정부중요기관들의 직원들이 모여사는 동내라 그렇게 느껴졌을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그러나 평양시에도 평 노동자로 별별일 없이 사는 평민들이 훨씬 많습니다. 
저의 부모님들도 평민 노동자로 평생 사시다 돌아 가셨습니다.
유미정가 2021.09.23 23:31  
회답이 늦어져서 죄송해요. 친척이 모란봉구역에서 살았는데    . 집이 어찌나 작던지 인민무력부 산하 군관인데. 좋은구역에 서 살려고  그런 코구멍 만한 집에서 산다고 했어요. 그래도 있을건 다 있고 전기도 잘오고 ㅋ
심풀이 2021.12.16 00:22  
학교다닐때 연애를 했다고 전교학생들모이는 학교 강단에 올라가 비판받던 ㅠㅠㅠㅠ 3일동안 단임선생 물리실에 가뒤넣고 A4용지를 겁나많이 주면서 비판서 쓰라고 ㅋㅋㅋㅋ 나 잘못한거 없는데 ㅋㅋㅋ 단지 걔랑 손잡았을뿐인데 .....92년도 그때는 단임선생 당직에 남자여자 다같이 가서 자도 아무일도 없을만큼 순직했는데 왜서 그렇게 어른들이 오바를 한건지 ㅋㅋㅋ 참
유미정가 2021.12.18 03:09  
참 순진한 시절이였죠. 길가다 남학생들 만나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ㅎㅎㅎㅎ아 당직 얘기하니 참 그립네요 그때가 ㅠㅠ 그추은 경비실에서 우들우들 떨면서 남자고 여자고 같이 꼭 붙어서 잤어요
심풀이 2021.12.18 12:37  
그러게요 ㅎㅎㅎㅎ저희때는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남녀혼합을 하다보니 당직때면 모두가서 경비실서 공부하고 따닥따닥 붙어서 자도 정말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데 ㅎㅎㅎㅎㅎ참 그때 그시절이 젤 아름다운듯요 학교때 연애를 한다해봤자 그냥 손잡고 만나면 아이들이랑 놀다 들어가는게 전부였는데
유미정가 2021.12.19 07:48  
인상깊은건 수십리를 걸어서 겨울 화목동원 가는거에요.  나무하러 가서 남자여자어울려 나무베고 내려와서는 우등불 주위에 둘러앉아서 그 볼품없는 도시락을 먹고 3-4시간 걸어서 집에오는길에 연애도 하고 ㅎㅎㅎ힘들고 고달프면서도 참 순진하고 소박했던 시절이네요
심풀이 2021.12.23 23:04  
ㅎㅎㅎ 저는 양강도라 호프동원 들쭉동원갔을때가 젤....삼지연으로 들쭉동원가서 백두산밑에서 길을잃어 들쭉배낭메고 밤새걸었던 기억들이....참 그땐 힘들어서 정말 도망치고싶은 마음이였는데 그래도 웬지 그때가 좋았던것같아요.정말 그때의 추억이 참 눈앞에서 잊혀지지않아요 덕분에 젊은날의 추억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유미정가 2021.12.24 17:48  
저의어머님이 양강도에서 자라셨어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거기서 증조할머님이랑 사셨어요.  제가 어릴때 엄마랑 거기 놀러가면 친척들이 감자로 진짜 많은 음식을 해주셨어요. 거기날씨는 참 변덕도 심했어요 ㅎㅎㅎㅎ

시장풍경

유수 3    1,805

시장풍경

유수 0    1,698

이모 저모

유수 1    1,912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