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부부, 불화의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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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2 08:30
예로부터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한다. 살다보면 서로의 오해로 다투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때로는 실속도 없는 “선전포고”가 온밤 오락가락 하다가도 이튿날 멋쩍은 웃음 한방이면 언제 그랬냐 싶게 넘어가는 것이 바로 부부다.
하지만 남한에 와 생활하면서 “부부싸움은 칼로 살 베기”라는 변조된 낱말을 듣게 되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는 사례들을 목격하게 된다. 남한의 이혼율이 세계에서 제일 높게 나타난다는 자료들을 접할 때면 답답한 심정에 싸이면서 제발 그것이 잘못된 통계였으면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안타까운 것은 부부가 갈라지는 좋지 않은 일이 남한에 온 탈북부부들 속에도 종종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탈북부부들은 전대미문의 독재와 인권유린, 생명조차 연명하기 힘든 극도의 빈곤 속에도 헤어지지 않고 사선을 넘어 목숨을 내건 탈북을 단행한 전우이기도 하다. 온갖 만난풍파 속에 단련되고 굳어진 이런 부부가 남한에 와 살다가 갈라진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실지로 일어나는 현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원인이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이혼하는 데는 서로의 성격차이나 취향, 경제적 이유, 혹은 배우자의 외도와 무관심 같은 것이 주되는 원인이겠지만 그런 이유로 이혼하는 일은 어느 사회에나 있는 일이며 북한에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이혼할 것 같으면 벌써 북한에서부터 갈라서야 했을 탈북부부들이다.
혹시 남한사람들이 걸핏하면 이혼을 한다고 하니 그것도 선진문화인가 하여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은 아닐까.
평소에 내가 늘 좋아하는 한 탈북선배가 있다.
남한에 온지 10년도 넘는 그는 남한에 와서 아내와 갈라진지 몇 해가 되며 지금은 다른 탈북여성과 동거한지 꽤 오래 되었지만 곁에서 지켜보니 그것도 끝까지 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남한생활 10년 된 그에게는 하나도 변하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보통 때에는 밖에 나가 제 할일도 잘하고 예의도 밝은 그를 보면 과연 서울 밥을 먼저 먹은 선배가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 데 집에 가보면 사람이 딴판이었다. 아예 집사람을 하인 취급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 같이 행동한다.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남자든 여자든 차별 없이 매너 좋기로 소문 난 사람인데 집에서는 “절대군주제”를 고집한다. 북한에서의 가부장적인 권위주의 사고를 조금도 극복하지 못하고, 아니 그럴 의사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두 얼굴을 가지는 것이 남한에서 살아가는데 편리한 지혜라고 일러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의연히 그의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짜증이 난다.
아마도 그는 아내는 하급이고 남편은 상급이라고 인정 되는 북한에서의 가정질서를 포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내가 그에게 말했다. “…남한생활 10년이 아깝네. 아직도 북한식으로 살면 어떻게 해요. 선배가 하는 행동이 꼭 권좌를 절대 내놓지 않으려는 김정일이나 같아요. 그런 식이면 어느 여자가 선배와 끝까지 살아요?”…
남한에 정착한지 오래 된 사람 속에도 가끔 이런 일이 있는 것을 보면 갓 입국한 사람들의 경우는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남성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다. 남성들이 가부장적질서를 고집하는 “수구꼴통”이라면 여성들은 급진적으로 “가정민주화”를 요구하고 나서기도 한다. 남한남성들이 아내에게 살뜰하다느니, 남한에서는 아내가 밥을 짓지 않아도 남자들이 잘해준다는 등, 그래도 양보 없는 남편에게는 “정 그럴거면 이혼 하고 말겠다”고 최후통첩을 들이대기도 한다.
죽어도 시댁에서 죽어야 한다는 유교적관념이 남달리 굳던 여성들까지도 “여기가 자유세상인데, …여기 사람들 툭하면 갈라도 잘 지던데 내라고 못할게 뭐 있어?”하고 달려드는 모습을 볼 때면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착잡하다. 어느 것이 선진화 된 것이고 어느 것이 자유이며 방종인지 아직은 잘 가리지 못하는 민주주의의 초년생들에게 남한의 어두운 면이 먼저 비쳐드는 모양새는 참으로 안타깝다.
변화하지 않으려는 남편들의 버티기와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마치 “가정의 권력은 아내로부터 나온다.”로 착각하는 듯한 아내들과의 충돌을 극복할 무슨 신통한 비법은 없을 가.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남북의 문화차이 해소란 바로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구체적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한에 와 생활하면서 “부부싸움은 칼로 살 베기”라는 변조된 낱말을 듣게 되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는 사례들을 목격하게 된다. 남한의 이혼율이 세계에서 제일 높게 나타난다는 자료들을 접할 때면 답답한 심정에 싸이면서 제발 그것이 잘못된 통계였으면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안타까운 것은 부부가 갈라지는 좋지 않은 일이 남한에 온 탈북부부들 속에도 종종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탈북부부들은 전대미문의 독재와 인권유린, 생명조차 연명하기 힘든 극도의 빈곤 속에도 헤어지지 않고 사선을 넘어 목숨을 내건 탈북을 단행한 전우이기도 하다. 온갖 만난풍파 속에 단련되고 굳어진 이런 부부가 남한에 와 살다가 갈라진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실지로 일어나는 현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원인이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이혼하는 데는 서로의 성격차이나 취향, 경제적 이유, 혹은 배우자의 외도와 무관심 같은 것이 주되는 원인이겠지만 그런 이유로 이혼하는 일은 어느 사회에나 있는 일이며 북한에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이혼할 것 같으면 벌써 북한에서부터 갈라서야 했을 탈북부부들이다.
혹시 남한사람들이 걸핏하면 이혼을 한다고 하니 그것도 선진문화인가 하여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은 아닐까.
평소에 내가 늘 좋아하는 한 탈북선배가 있다.
남한에 온지 10년도 넘는 그는 남한에 와서 아내와 갈라진지 몇 해가 되며 지금은 다른 탈북여성과 동거한지 꽤 오래 되었지만 곁에서 지켜보니 그것도 끝까지 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남한생활 10년 된 그에게는 하나도 변하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보통 때에는 밖에 나가 제 할일도 잘하고 예의도 밝은 그를 보면 과연 서울 밥을 먼저 먹은 선배가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 데 집에 가보면 사람이 딴판이었다. 아예 집사람을 하인 취급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 같이 행동한다.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남자든 여자든 차별 없이 매너 좋기로 소문 난 사람인데 집에서는 “절대군주제”를 고집한다. 북한에서의 가부장적인 권위주의 사고를 조금도 극복하지 못하고, 아니 그럴 의사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두 얼굴을 가지는 것이 남한에서 살아가는데 편리한 지혜라고 일러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의연히 그의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짜증이 난다.
아마도 그는 아내는 하급이고 남편은 상급이라고 인정 되는 북한에서의 가정질서를 포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내가 그에게 말했다. “…남한생활 10년이 아깝네. 아직도 북한식으로 살면 어떻게 해요. 선배가 하는 행동이 꼭 권좌를 절대 내놓지 않으려는 김정일이나 같아요. 그런 식이면 어느 여자가 선배와 끝까지 살아요?”…
남한에 정착한지 오래 된 사람 속에도 가끔 이런 일이 있는 것을 보면 갓 입국한 사람들의 경우는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남성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다. 남성들이 가부장적질서를 고집하는 “수구꼴통”이라면 여성들은 급진적으로 “가정민주화”를 요구하고 나서기도 한다. 남한남성들이 아내에게 살뜰하다느니, 남한에서는 아내가 밥을 짓지 않아도 남자들이 잘해준다는 등, 그래도 양보 없는 남편에게는 “정 그럴거면 이혼 하고 말겠다”고 최후통첩을 들이대기도 한다.
죽어도 시댁에서 죽어야 한다는 유교적관념이 남달리 굳던 여성들까지도 “여기가 자유세상인데, …여기 사람들 툭하면 갈라도 잘 지던데 내라고 못할게 뭐 있어?”하고 달려드는 모습을 볼 때면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착잡하다. 어느 것이 선진화 된 것이고 어느 것이 자유이며 방종인지 아직은 잘 가리지 못하는 민주주의의 초년생들에게 남한의 어두운 면이 먼저 비쳐드는 모양새는 참으로 안타깝다.
변화하지 않으려는 남편들의 버티기와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마치 “가정의 권력은 아내로부터 나온다.”로 착각하는 듯한 아내들과의 충돌을 극복할 무슨 신통한 비법은 없을 가.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남북의 문화차이 해소란 바로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구체적 과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