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없는 새
북한에서 살 때 우리는 일제로부터 온 가족(아버지, 엄마, 형제, 삼촌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나라를 구해주고 미제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주신 김일성과 당에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할 것을 강요받았다.
그래서 김정은 까지도 아무 불만 없이 3대 세습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그곳에서 늘 해오던 말 중에 "은혜를 갚지 못할지언정 역적은 되지 말라" 라는 구절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게 남아있다. 우리는 결국 김일성일가와 당에 빚을 지며 살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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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국가가 구제 못하는 가족을 내 스스로의 힘으로 구제하고자 두만강을 건넜건만 어처구니 없게도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또 우리 앞에 펼쳐졌다. 그곳에서 우리는 거의 대부분 강제로 마음에도 없는 중국인들과 동거를 하게 된다. 감정이 없으니 그냥 씨받이에 가깝다고 하겠다. 그러나 거기서 또 우리는 갈 곳없는 우리를 먹여주고 재워주었다는 빚을 지게 된다. 자기네가 아니었으면 어디가서 살아남겠냐는 것이다.
세번째로 대한민국에 왔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고 말도 같고 글도 같고 역사도 같고 핏줄도 같고 고향과도 가깝고 통일 되면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리라는 한가닥 희망을 안고 말이다.
한국에 들어오니 임대주택도 제공해주고 정착금도 마련해 준다. 워낙 북한에서 김일성의 고마움만 웨치던 사람들이니 여기 와서도 똑 같이 고마움에 정착을 잘 하리라 굳게 다짐한다. 지금도 가끔은 내가 남한에 온 게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그런 분들이 꽤 계신다.
그러나 정착은 말처럼 쉽지 않다. 여기서 나서 자라온 본터민들도 지쳐하는 정착에 우리는 도전해야 한다.
그러나 그 임대받은 집과 정착금 으로 인해 새터민들은 또 한 번의 상처를 받는다.
주변에서 새터민이라면 제일 먼저 물어보는 질문이 “나라에서 집도 받고 정착금도 받으셨겠네요” 이다. 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답변해야 이 분들이 좋아할까? 그들이 바라는 답변은 과연 뭘까?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물론 받아준것만해도 고마운 일인데 이렇게 임대주택도 마련해주시고 정착금까지 마련해 주시니 너무 고맙다는 말이 나오게 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게 다 우리 세금에서 나온 것이다. 라고 한다.
그러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대한민국에 또 다시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빚을 져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어떤 느낌인지를...
우리는 결국 평생 빚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빚을 지고 안 갚으면 배은망덕하고 부도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역차별"이란 소리도 엄청 듣는다. 그러면 빚의 무게는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무겁게 무겁게 우리의 두 어깨를 짖누른다. 어쩜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우리는 또 다른 ‘이방인’인 것이다.
또 한가지 실례를 들어 본다면 자기만 잘 먹고 자식들을 굶주리던 상관없는 부모가 있다. 하루는 자식들이 자기 형제들이 굶어죽는 광경을 보고 부모를 원망할 사이도 없이 삼촌집에 들어갔다. 삼촌집에도 자식들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삼촌은 어서 오라 반갑게 맞아주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평생을 삼촌집에서 살아야 하는 그들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삼촌은 우리가 왔다고 어쩔 수 없이 한칸에 한명씩 쓰던 방을 우리에게 배정해주다보니 이전의 삶보다는 조금씩 불편해진다. 삼촌은 삼촌이라서 눈치를 안 봐도 될지 모르지만 삼촌 어머니와 사촌동생들은 어지간히 눈치가 보인다. 그래서 이제부터 충성에 보답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 담부터 삼촌네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하고 사촌동생들의 눈치를 보면서 억울해도 부모를 잘못만난 탓에 아무 대꾸 못하고 그냥 고맙다고 조아리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움을 받아 언제 내쳐질 지 모르니깐. 내쳐지진 않더라도 정 눈치가 보이면 다시 그 매정한 부모집에 다시 들어가던지 또 다른 살 길을 찾아 떠나야 한다.
여러분들은 어느 쪽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하는가? 물어보나 마나 모두가 그래도 삼촌집 자식으로 태어나는게 더 나을 것이라 생각을 할 것이다.
우리가 북한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것도 아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여기 온것도 아니다. 탈북자들은 항상 눈치와 트라우마(고향에서 굶주림때문에 눈앞에서 부모님들이나 형제들,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냈거나, 그곳에 남겨 두고 왔거나 탈북과정에 가족들이나 같이 오던 동료들이 총에 맞아 죽거나 얼어 죽거나 강에 떠내려가 죽었거나 악어에게 먹혀죽었거나 말라죽는 모습들을 직접 목격한 사람)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배고품이 가장 큰 설음인줄 알았는데 그 보다 더 큰 설음이 정고품인 줄 한국에 와서 더욱 절실히 깨닫는다. 나라 없는 설음 또한 마찬가지다. 자기 나라에서도 대접 못 받던 국민이 어디 간들 대접 받으랴.
새터민들 그렇게 배은망덕한 사람들 아니다. 정착을 열심히 잘하는 새터민들도 엄청 많다. 새터민 얼굴에 똥칠하는 몇 몇 사람들을 새터민 전체의 모습으로 생각하는 과잉반응은 좀 아닌 것 같다. 새터민들도 인간이다. 그들도 좀 쉬는 시간을 가져볼 권리가 있다.
너무 성급하게 결과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조금만 더 느순 한 마음으로 지켜봐 달라.
고향에 갈 수 있는 사람들과 고향이 있어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어찌 같겠는가? 부모형제와 웬수 져서 안 보는 사람들과 생리별로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사람들과 어찌 같겠는가?
다문화분들은 이곳이 좋으면 정을 붙히고 살고, 살기 싫으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면 되는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이 땅에 영원히 뿌리를 박아야 할 사람들이다.
더 이상 새터민들을 “이방인”으로 몰지 말아줬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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