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에 감사하기 (추석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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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9 05:30
며칠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놀러왔습니다. 나이는 동갑, 그녀의 고향은 저기 경상남도 통영입니다.그도 결혼과 동시에 고향을 떠났고, 나 또한 고향이 아닌곳이기에 서로의 공감대가 조금은 형성되었나 봅니다. 이리 저리 시간에 쫓겨서 자주는 못보지만 가끔 서로 커피 한잔 마시며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곤 합니다.
그런데 새터민(북향민)이라면 누구나 한두번쯤은 받아보았을법한 질문을 그녀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어왔습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넌 어떡할래?..."
역시 북과 남 공통의 주제는 빼놓을수가 없는가 봅니다. 한참을 묵묵히 생각하다가 내가 역으로 다시 그녀에게 되물었지요.
"너는 어떡할껀데?..."
나는 당연히 그녀에게서 나도 한목숨 바쳐 나라를 지킬꺼다라는 이야기가 나올줄 알았거든요.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펄쩍펄쩍 뛰면서 내가 지킬게 뭐가 있어서, 꼴랑 이십평대 이집 그까짓거 얼마 한다고, 시댁 부동산 몇푼 하지도 않는다면서, 삼*이나 L*같은 재벌들이 지켜야 한다고, 잃을게 많은 넘들이 지켜야 하는거 아니냐고 그러더군요.
내가 보건대 분명히 나보다는 가진것이나 누리는 것이 훨~~씬 많은데도 그녀는 조금도 만족함을 모르는듯 하였습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니가 누리고 있는 것들, 지켜야 할 것들을 또박또박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니가 버튼만 누르면 되는 밥도 하기 싫다고 짜장면? 짬뽕 하면서 중국집 메뉴를 뒤적일때 북에서는 한줌 옥수수죽을 끓여서 식구들 먹이겠다고 십여리 넘는 곳에서 삭정이를 주어서 이고 와야 한다고,
니가 마트에 장보러 가서 이건 수입산이니, 이건 유기농이 아니니 하면서 타박할 때 북에서라면 중국산 돌섞인 옥수수가루로나마 죽을 쑤어서 또 한끼를 때울수 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한다고,
니가 쥐꼬리만한 월급을 가져온다고 허구헌날 구박하는 남편은 북에서라면 "충성의 외화벌이"에 내몰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송이보다 사람이 더 많은 심산속을 헤매이다가 절벽근처에 보이는 송이 한뿌리를 캐겠다고 올라가던중 발을 헛디뎌 떨어져 허리가 부러지고 반병신이 되어도 억울하다는 말 한마디 못해야 한다고,
니가 매니큐어 바르고 요가를 할까? 벨리댄스를 할까? 하고 고민하는 시간에 북에서라면 산나물 한줌이라도 더 뜯느라고 니 손은 파랗게 풀물이 들꺼라고, 니가 툭하면 친정부모님 보고 싶다고 한달에 한두번씩 어김없이 달려가는 친정도 북에서라면 번번히 허락을 받고서야 겨우 일년에 한 번 정도 갈수 있다고,
저녘마다 MBC니,SBS니, KBS니서로 다른 드라마 보겠다고 싱갱이하는것도 그림속의 떡일뿐이라고, 그나마 하나뿐인 채널도 보는 도중 툭하면 나가는 전기때문에 정말 tv는 바보상자일 뿐이라고,
주말이면 삼겹살을 먹으러 갈까, 샤브샤브먹을까하면서 행복하게 메뉴를 고민하는 니가 북에서라면 송기떡(소나무껍질떡)을 먹은 자식들 뒤가 막혀서 못볼 때 저가락으로 파내주면서 피눈물을 흘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더우기는 너와 내가 오늘처럼 이렇게 커피 한잔 마시면서 우리들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들을 털어놓고 주고 받고 할수 있는 현실이 얼마나 귀중한것인지, 분명하게는 잘 나가는 친구나 지인들과 사사건건이 비교하면서 불만과 한탄으로 자신의 젊은 날들을 흘러 보내기에는 살아 숨쉰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건지에 대해서, 니가 누리고 있고 지켜야 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말해주었습니다.
나는 니보다는 지킬 것도, 누릴 것도 적지만 내가 새로이 행복을 찾아가는 이 땅을 위해서 당당하게 맞서겠다고 말입니다.
친구는 제 이야기가 조금은 와닿았나 봅니다. 새삼스럽게 부모님께 감사한다고 하더군요. 언제는 해준게 없다면서 툴툴대더니 ㅎㅎ 북에서 태어나게 해주지 않은것만으로도 무지하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그래 니말이 맞아. 그러니까 뭘 해주지 않는다고 투정부리지 말고 부모님께 감사하고 효도 많이 해야 해."
친구는 살짝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러겠노라 하더군요. 신문을 보니까 군복무를 몇개월 또 줄인다고 하더군요. 솔찍히 조금은 염려스럽습니다.
안보의식, 이것이 어찌 군인들에게만 한한 일일런지요. 이 땅에 몸 담고 살아가는 사천구백만 우리 국민들이 모두다 누리고 있는것에 대한 감사함과 지켜야 할 것에 대한 생각들을 한두번쯤은 해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