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슬픔 -도서관에서-

존재하지 않는 슬픔 -도서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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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하지 않는 슬픔

                                                       -도서관에서-



                                                                                              이호원











   내가 매일 도서관에서 당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의 모습만 봐도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단 하루라도 좋으니 그런 당신 앞에 마주앉아서 같이 책을 읽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신 주위에는 내가 끼어들 자리가 없었습니다. 내가 도서관에 들어설 때면 언제나 당신 주위엔 다른 이들이 먼저 와 앉아 있었으니까요.

   하루는 당신 앞에 앉고 싶어서 새벽같이 도서관에 찾아가 당신이 항상 앉는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내가 있는 책상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앉은 다음 당신 곁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당신은 내가 자리에 앉은 지 몇 분이 안 돼서 나를 피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당신을 닳도록 바라봤으니까요. 떠나기 전 당신은 나를 흘깃 쳐다보았지만, 당신의 금테 안경 속에서 빛나던 그 눈빛조차 내게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당신의 피부는 정말 하얬습니다. 책장을 넘기던 가늘고 긴 손가락과, 은은하게 풍겨오던 샴푸냄새는 나를 더욱 애틋하게 만들었습니다. 단 몇 분이었지만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좋지 않은 눈빛을 받고서도, 당신이 나를 피하는 걸 알면서도, 나는 당신을 보러 도서관에 갔습니다. 멀리서만, 당신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그저 당신을 바라봤습니다. 그래야지 당신을 매일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당신을 보는 게 좋아서 맹목적으로 도서관을 찾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당신에게 길들여졌습니다. 아니, 당신을 따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 당신처럼 독서에 열중하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이 마감할 때까지 당신과 함께 남아 있었습니다. 나갈 때도 함께 나갔지만, 당신께 말을 걸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내일부터 당신을 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인가, 당신이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도 가끔씩 나를 흘끔 보기 시작했으니까요. 인정하겠다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認定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고백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솔직히 고백은 나중에 하더라도 이제는 당신 곁으로 가 책을 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먼저 가서 당신을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그 날 횡단보도를 건너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오는 차에 치이고 말았으니까요. 정신을 잃기 일보직전 앰뷸런스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당신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몹시도 듣고 싶었습니다. 가끔씩 음음 거리며 숨을 고르는 소리와 미세하게 새나오는 숨소리도 듣고 싶었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당신의 날숨에서는 수박냄새가 났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비록 옷은 더러워진 상태였겠지만 뒤도 안 돌아보고 당신에게 달려갔습니다.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 당신은 이미 와 있었습니다. 당신의 책은 언제나 오백 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었습니다. 나는 소리 없이 다가가 말없이 당신을 마주보고 앉았습니다. 당신을 뚫어지게 바라봤지만 당신은 나를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향해 웃고, 윙크를 하고, 혀를 날름거리고, 손짓을 해봤지만 당신은 전혀 개의치 않고 책을 읽었습니다.

   시간이 얼마쯤 흐른 뒤 드디어 당신도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습니다. 그 때 내 몸은 고압전류가 할퀴고 지나가는 것처럼 짜릿했습니다. 한참동안 당신의 시선이 나를 마비시켰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내 앞에서 나를 똑바로 본 채로 기지개를 편 후, 하품을 크게 했습니다. 그러더니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 하나를 귓속에 넣은 후 돌리다 다시 그 손가락을 콧속으로 가져가 살짝 파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에게 귓밥을 날린다거나 코딱지를 튕기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문소리가 날 때마다 시선을 살짝 문 쪽으로 옮겼습니다.

   그렇게 얼마간 당신은 도서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계속 바라봤습니다. 당신이 고개를 들어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릴 때는, 당신을 향해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도서관은 한없이 고요했습니다.



<끝>

 

 

참고로 제 이름이 이호원입니다^^

이 게시물에 달린 코멘트 6
큼이 2013.12.12 08:01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건느시던 그정신으로 용기내시여 씩씩하게 고백해보세요, ㅋㅋ~~~
메리츠화재 2013.12.12 10:42  
아 이건 제가 예전에 써 놓았던 단편 소설이랍니다 ㅋㅋㅋ 주인공은 죽었구 ㅋㅋ
큼이 2013.12.12 21:21  
그주인꽁 살리세요,,,,,, 제가 제친구 소개 시켜 줄라구요,,,,,,, ㅋㅋㅋ,,,,,,,,
메리츠화재 2013.12.19 08:12  
감사합니다.^^소개시켜 주시면 감사하죠 ㅋㅋㅋㅋ
쵸친과바라케 2014.03.26 08:22  
잘보았ㅇ습니다 감ㅇ미롭게 ~~좋은 헌대목이네요~^^
남남북녀1 2015.07.23 00:36  
좋은글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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