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이라는 그말 두글자는 날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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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2 02:31
나는 어릴적부터 고생이라는 말자체를 달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입에서 튀어나오는것이 고생한다는 말입니다..
근데 난여기에서는 더없이 행복하고 즐겁고 늘 평화롭게 살고있습니다..
난 1998년3월8일날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아버지는 생일이틀을앞두고 돌아가셧습니다..
아버지는 그래도 마지막 생일떡과 음식은 많이드시고또한 돌아가실마지막까지도 우리를 두고가는것이
마음에 걸려서 눈을 제대로 감지못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전 아버지가남겨놓은 말한마디를 지금도 기억하고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아버지가돌아가신후 어머니는 우릴 도저히 키울수가없다고 죽어도 엄마를 찾지말라는 글쪽지를 남겨놓고 어디론가 가버렸고 그러다보니 우린 먹을 것이없어집에서쓰러져 누워있다가 이러다가 온가족이 다굶어죽게생겼고해서 난가까스로 몸을움직여서 벌벌 기여서 시장에나가 남들이먹던음식물과 땅에 떨어진 음식들을 주워서 집에와서 다시끓여서동생들에게 먹이군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동생들은 기운을 차리면서 그때부터우리 형제는 시장에나가 일해주고음식을 얻어먹고또한 땅에떨어진 입쌀알과 강내이 그리고 심지어 밀가루까지 글거모아서 모래알 싶히는 그런밀가루로 죽도해먹고 하면서 살았고 또한 여름에는 감자이삭주이해서 먹고살고 가을철에는 강냉이며 콩이며 모든낟알을 주워서 먹고살았고또한 벼밭에가서는 벼단을 훔쳐서 흩어서말리워서 겨울먹을 식량를 마련해놓는라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살다가 가을이지나고 겨울이다가오자 끄때부터는 기차가다니는 역전홈에나가서 광산에서 내려오는 정강이란걸 훔쳐서 팔아서돈을 모아서 하루에 한끼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는 도주하신 어머니때문에 보위부에 끌려가서 매를맞고 고문을 당하였습니다..
그곳에서는 우릴 굶기여죽이겠다고하면서 엄마가있는곳을 대라며 막 쇠고댕이로온몸을 때리였고 그러다우리가 입을 안연다고쇠고댕이를 불에달구어 등에 대기도햇습니다..
그런데 그때 두동생에게도 그쇠고댕이를 대려고하기에난 동생들 대신 내가몫을 다맞을테니 두동생들은 보내달라고 했더니 두동생은 다행히도 나갔고 그후부터 난 끼니를 꼬박 굶으면서 매와 고문을 당하게 되였습니다..
그때제나이는 12살이였고 둘째동생은 10살이였고 막내동생은 7살이였습니다..
그래서 뭐든지 동생들은 내가돌봐주지않으면 얻어못먹고 맞아울고하면서 살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난 죽도록 매와 고문을 당하고 한달 보름만에 나왔는데 너무맞아서 걷지도 못하겠고 벌벌기지도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난 그만 그보위부 문앞에서 그만 쓰러지고 말았고 그러다보니 우린모두 고아원에 보내졌습니다..
혹시회원님들은 아시겠는지 모르겠는데요..
북한에는 꽃제비들이 많아서 9월27일날에 생겻다고해서 9.27상무라고했고 5월11일날에 생겼다고해서
5.11상무라고 했었지요..
그래서우린 그곳에서 지내면서 먹고자고하면서 살았지요..그러던어느날 세월이흘러서2002년6월에 엄마가 중국에서 붙잡혀서 나오다가 도망을 쳐서 우리가있는곳을 알고 찾아왔더라구요...
전그때 엄마가불러도 모른척 안나갔었어요..
근데아마 동생들은 엄마를 많이기다리고있었던것같아요..
그때엄마는 우리를 보고 또다시 중국으로 도망을 쳤고그러다보니우린 또다시 고와가되였습니다..
그래서 우린 그곳에서살다가. 다른집으로가서 살게 되였는데 요..
그집은 농촌집인데요..아이들이3명이나있는데 우리3형제를 꼭데리고가겠다면서 신청을해서 우릴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그집에 도착해서 한2달동안은 정말로잘해주더군요..
왜냐하면은 둘째동생은 3월달에생일이잇고막내동생은4월달에 생일있고난 7월에 생일이있었고해서 회사사람들까지청해서 먹이고는 그후부터는 우릴소부려먹듯이 부려먹는에요..
그리고 밥도 우리형제중에 풀많이뜯어오는사람만 밥도밥아닌 죽물맥물을 주고 조금 뜯어온사람은 아예굶기군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두동생은 많이지쳣고해서 다시그집에서나와서 우리가있던 상무에 들어갔지요..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니그후부터는 그런데 안보내더라구요..
그러다 세월이 흘러서2004년4월25일날에둘째동생이 함경남도 검덕광산 돌격대에 입대해서 가게되였고 전언니가되여서 사진한장 찍어주지못했고 그냥 보내게되였고 그후에는 둘째동생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사항에서 난 여기로 오게 되였습니다..
근데 막내동생은 내가 확인을 했지만 둘째동생이 행방을 몰라 지금도 잠이안옵니다..
전그래서 지금도 엄마에대한 원망감과 실레감이 꽉차있습니다..
전그때그고문과매를 생각하면은 지금도 소름이끼고꿈도 그런꿈을 꾸군한답니다..
회원님들 미안합니다..나뿐아니라 모든 회원님들이 다고생을하면서 살다가여기에 왔다는것을 전 너무나 잘알기에 저도한번이글을 올려보았습니다..
그럼안녕히 2009년12월12일2시26분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