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결혼이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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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3 08:04
결혼이 뭔지..
10년도 훨씬 지난 그때 마지막으로 사랑에 빠져 본 뒤론 더더욱.
하긴 그 전에도 결혼에 대한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 머리 속엔 결혼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먼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어떻게든 결혼을 해 보겠다고 노력을 해 보지만
하루 하루 나이를 쌓아 가면서 더 어려워 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년은 아버님의 칠순이셨다.
형제 중에 유일한 아들인 내게 거는 기대는 아무래도 크지 않으셨을까.
누나나 여동생까지 모두 결혼을 해서 아이들 낳고 잘 살고 있는데
하나뿐인 아들이 결혼을 못해(?) 며느리도 없고 친손자도 없어
창피하시다며 칠순연을 포기해 버리셨다.
대신 곧 있을 어머님의 칠순연 전까지는 결혼을 하라는 말씀과 함께.
평생 효도라는 것을 해본 기억이 없는 나로선,
더더군다나 한국에서 멀리 떠나 이렇게 혼자 살고 있는 나로선,
결혼이 어쩌면 부모님께 할 수 있는 내 최소한의 효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결혼을 하자 마음을 먹어 보았다.
자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내 나이또래의 여자는 대개 20살에 가까운 아이들이 있고
어떤 경우는 할머니인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사람들을 제하다보면 남는 것 20살 초반의 사람들...
한국에서 찾아보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지인들의 소개로 받아 약 8개월 정도 연락을 하고 지냈다.
중간 세번 정도 만나기도 했었다.
그래도 말이 통해서 비록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국 작년 연말 마지막으로 만나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제일 큰 문제는 아무래도 내가 그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었을것이고
그다음은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가 살기를 원했고 난 그렇치 않다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난 그녀를 만나러 비행기에 있었고 2008년이 2009년으로 바뀌는 날
난 다시 비행기에서 이곳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내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를 꿈꾸었었는데
프로포즈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만 노력하면 모든 문제를 덮어 버릴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나만의 생각이었던 것이었을까..
그렇게 돌아오고 나서 며칠을 앓아 누웠었다.
정신을 차리고 그동안의 모든 기억들을 지우려 노력했다.
마음에 사람을 받아 들이기가 힘들었던 만큼 그 기억을 지우기도 그 배로 힘이 들었다.
받았던 모든 메일과 보냈던 모든 메일을 지웠다.
그러다 노트북을 떨구어 버렸다.
그 다음날은 외장 하드 드라이브를 떨구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듯 말이다.
노트북이 맛이 가기 전에 모든 자료들을 백업 받아 놓았는데
그 마저도 모두 날아가 버렸다.
덕분에 그녀와의 모든 자료도 이젠 없어지게 되었다.
내가 변했다.
난 혼자서도 씩씩하게 영화도 보러가고 밥도 먹으로 다니는 사람이었다.
여행을 가도 혼자가고 아파도 병원에 끼적 끼적 혼자 찾아가던...
그런데 이젠 혼자하는 일들이 심심하게 느껴진다.
쓸데없는 잡담이라도 나눌 사람이 그립고
맛없는 음식이라도 함께 나누어 먹을 사람이 아쉽게 느껴진다.
사람이 떠난 자리는 사람으로 채워야 하는 것일까..
며칠 따뜻했던 날씨가 다시 추워지었다.
추워진 날씨 만큼이나 마음도 서늘하다..
10년도 훨씬 지난 그때 마지막으로 사랑에 빠져 본 뒤론 더더욱.
하긴 그 전에도 결혼에 대한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 머리 속엔 결혼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먼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어떻게든 결혼을 해 보겠다고 노력을 해 보지만
하루 하루 나이를 쌓아 가면서 더 어려워 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년은 아버님의 칠순이셨다.
형제 중에 유일한 아들인 내게 거는 기대는 아무래도 크지 않으셨을까.
누나나 여동생까지 모두 결혼을 해서 아이들 낳고 잘 살고 있는데
하나뿐인 아들이 결혼을 못해(?) 며느리도 없고 친손자도 없어
창피하시다며 칠순연을 포기해 버리셨다.
대신 곧 있을 어머님의 칠순연 전까지는 결혼을 하라는 말씀과 함께.
평생 효도라는 것을 해본 기억이 없는 나로선,
더더군다나 한국에서 멀리 떠나 이렇게 혼자 살고 있는 나로선,
결혼이 어쩌면 부모님께 할 수 있는 내 최소한의 효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결혼을 하자 마음을 먹어 보았다.
자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내 나이또래의 여자는 대개 20살에 가까운 아이들이 있고
어떤 경우는 할머니인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사람들을 제하다보면 남는 것 20살 초반의 사람들...
한국에서 찾아보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지인들의 소개로 받아 약 8개월 정도 연락을 하고 지냈다.
중간 세번 정도 만나기도 했었다.
그래도 말이 통해서 비록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국 작년 연말 마지막으로 만나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제일 큰 문제는 아무래도 내가 그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었을것이고
그다음은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가 살기를 원했고 난 그렇치 않다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난 그녀를 만나러 비행기에 있었고 2008년이 2009년으로 바뀌는 날
난 다시 비행기에서 이곳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내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를 꿈꾸었었는데
프로포즈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만 노력하면 모든 문제를 덮어 버릴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나만의 생각이었던 것이었을까..
그렇게 돌아오고 나서 며칠을 앓아 누웠었다.
정신을 차리고 그동안의 모든 기억들을 지우려 노력했다.
마음에 사람을 받아 들이기가 힘들었던 만큼 그 기억을 지우기도 그 배로 힘이 들었다.
받았던 모든 메일과 보냈던 모든 메일을 지웠다.
그러다 노트북을 떨구어 버렸다.
그 다음날은 외장 하드 드라이브를 떨구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듯 말이다.
노트북이 맛이 가기 전에 모든 자료들을 백업 받아 놓았는데
그 마저도 모두 날아가 버렸다.
덕분에 그녀와의 모든 자료도 이젠 없어지게 되었다.
내가 변했다.
난 혼자서도 씩씩하게 영화도 보러가고 밥도 먹으로 다니는 사람이었다.
여행을 가도 혼자가고 아파도 병원에 끼적 끼적 혼자 찾아가던...
그런데 이젠 혼자하는 일들이 심심하게 느껴진다.
쓸데없는 잡담이라도 나눌 사람이 그립고
맛없는 음식이라도 함께 나누어 먹을 사람이 아쉽게 느껴진다.
사람이 떠난 자리는 사람으로 채워야 하는 것일까..
며칠 따뜻했던 날씨가 다시 추워지었다.
추워진 날씨 만큼이나 마음도 서늘하다..